설교

주후2022년6월5일 주일낮예배

오예1 2022. 6. 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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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A1ROW_ahFTI 

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580~584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시편33:18~20
찬송/580장
성시교독/교독문100나라사랑2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581장
기도/표사라집사
성경봉독/이사야49:15
찬송/582장

영상/인천상륙작전
설교/나를 잊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내일 6월6일은 현충일입니다.
현충일(顯忠日)은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고 순국선열 및 전몰장병의 숭고한 호국정신과 위훈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는 기념일로 매년 6월 6일이며,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데에는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 있고, 모든 국가는 그 전란에서 희생된 자를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5월의 마지막 월요일'메모리얼 데이'라고하는 우리의 현충일과 그 성격이 비슷한 미국판 현충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48년 8월 정부수립 후 2년도 채 못 되어 6·25동란을 맞았고 이에 40만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하였습니다. 1953년 휴전이 성립된 뒤 3년이 지나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자 정부는 1956년 4월 대통령령 제1145호로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매년 6월 6일을 현충기념일로 지정하여 공휴일로 하고 기념행사를 가지도록 하였는데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주관이 되어 기념행사를 행하는데 서울에서는 국립묘지에서 행해집니다. 추모대상은 6·25동란에 전사한 국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모든 선열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선지자 이사야는,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성애보다 더 강하고 위대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멀리 200여 년 후에 바벨론에서 본토로 돌아올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사야의 이 예언과 약속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국내 문제 또는 정치적 문제로 국한시키기에는 너무 우주적이고 세계적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바벨론에 포로될 자들을 향해 위로와 소망과 권면의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잡혀 가더라도, 결코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주의 자비와 긍휼을 기다리며, 소망을 갖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장차 받을 고난은 먼 훗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여인이 그 젖 먹는 자식을 잊지 않는 것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는 모성애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은 택한 백성을 잊지 아니할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긍휼을 예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포로 생활의 암담한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인이 젖먹는 자식을 잊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택한 백성들을 잊지 않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멸망당한 성읍 예루살렘과 파괴된 성벽들을 재건할 사람들이 돌아오고, 성읍을 파괴한 자들은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화-가수 인순이의 이야기-
그녀는 불행한 환경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늘 밝고 당당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회자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혼혈아라는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누구보다 밝고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의 삶의 배후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이지요.” 사회자가 “인생의 최고 절정의 순간은 미국 카네기 홀 공연이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아니 라고 했습니다. “뉴욕 카네기 홀 공연 후 바로 이어서 가진 워싱턴 국방성 공연이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그 공연 전에는 그는 특별히 그 자리에 6.25 전쟁 참전 용사들을 많이 참여시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련된 자리에서, 장내에 가득한 참전 용사들 앞에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당신들 모두 내 아버지시고 나는 당신들의 딸입니다. 나와 같은 딸을 둔 것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난 당신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태어난 것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절대 불행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난 이말을 하려고 여기에 왔습니다. 나의 아버지들이여!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가수 인순이씨는 그 순간이 절정이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운명을 애꿎은 모습으로 만들어 놓은 그 사람들을 향해 용서와 사랑, 그리고 축복을 듬뿍 주었던 것입니다. 내게 해를 끼치고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생각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선택은 단 두 가지입니다. 내가 보복하느냐, 아니면 용서하느냐입니다. 내개 상식적으로 용납 할 수 없는 일을 가한 사람을 용서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없다고 분노하여 보복하면, 나의 감정과 상처가 낫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분노의 노예가 되어 또 다른 가해자가 되고 만다. 모든 생각과 나의 선택은 나의 몫이고 나이 책임입니다. 나는 부모와, 유전자와, 집안 환경을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스스로 독립할 능력이 주어진 이후의 삶과 환경의 모든 것은 나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불행이냐, 감사냐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 의심이냐, 확신이냐? 축복이냐 저주냐? 용서할 것이냐 원망할 것이야? 이 모든 것은 나의 선택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나는 날 아파트 몇 채를 남겼느냐가 우리 인생의 평가 기준이 되지 않습니다. 당신을 만난 것이 복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몇 명인지, 당신 때문에 도움을 받았다고, 당신의 영향을 받아 오늘이 있게 되었다고 눈물로 감사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그것이 우리의 삶의 결산일 것입니다. 당신이 이 땅을 떠나더라도 당신 삶의 정신과 사역을 감사하고 축복하며, 그 일을 계속 이어갈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축복을 선택한 것입니다./김은혜목사
우리나라와 민족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미국을 비롯한 유엔 16개국을 6.25동란 중에 한국에 파병케 하셔서 공산주의의 침략에서 우리나라를 지켜주셨습니다.
6.25때 유엔군은 57,615명이 사망했으며 그 중에 미군은 54,246명 이었습니다. 부상자 115,312명 중에 미군은 103,284명 이었습니다. 실종자 2,232명 중에 미군은 739명이었습니다. 포로 6,267명 중에 미군은 4,853명 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려 참전한 미국을 비롯한 유엔16개국의 도움과 국군장병들의 애국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와 민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잊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나라가 없이는 민족도 없고, 민족이 없이는 나라도 없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물가상승 등 여러 가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이 때에 개인의 이해득실이나 의견개진도 중요하지만 먼저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기본정신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정치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다시 한번 구하면서 이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 말씀 가운데 바로 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남북이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구합시다.
한편 하나님이 우리를 잊지 아니하고 사랑하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의 관심이 흐려지지 아니하며, 항상 기억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의 열도만은 변하거나 식어지지 않으며, 항상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실족하지 않게 하고, 상하지 않게 하며,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도록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눈동자처럼 지키시며,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보호하시고,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업는 것 같이 사랑하신다는 증거입니다.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을 만들어 주신 원동력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믿고, ‘여호와를 바라는 자’, 곧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여호와만이 우리의 ‘구원자’요, ‘구속자’요, ‘전능자’이심을 믿고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봉헌/다같이
찬송/583장
교회소식/인도자
찬송/584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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