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기

원수

오예1 2024. 12. 20. 08:54
728x90
반응형

주후2024년12월20일 금요일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마5:44)

예수님이 태어나기 500년 전, 소포클레스Sophocles는 '안티고네Antigone'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워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있다." 구약도 이웃 사랑을 가르쳤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의 대상에 포함하여 사랑의 계념을 훨씬 넓혀 놓으셨다.
나치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 중에 일세 블루멘탈 바이스Ilse Blu-menthal-Weiss라는 여인이 있었다. 남편은 독가스로 죽었고 아들 또한 그들에게 살해당했다. 그런 그녀가 수용소에서 쓴 시이다. "나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때리고 발로 짓밟습니다. 그러나 나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돌을 던집니다. 그러나 나는 미워할 수 없습니다. 그냥 슬프게 울 뿐입니다."
증오를 자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힘든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보다 더한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곧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악에 맞서기를 피한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상인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항하여 싸우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수를 찬양하고 무조건 껴안기를 원치 않으신다. 예수님은 가야바의 목을 끌어안지도 않았고 그의 악한 일에 동참하지도 않았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원수가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깊이 그를 이해해준다는 말이다. 마음속에 있는 증오 때문에 원수는 눈이 먼다. 그러나 당신은 편견 없는 눈으로 원수의 입장이 되어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당신이 자신을 옹호할 때도 원수의 방법을 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그의 짐을 당신이 지고, 그의 죄를 당신 죄로 여기고, 그것을 씻기 위해 그와 그에게 희생된 이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본을 보여주셨으니,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도 능히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

반응형

'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망  (4) 2024.12.22
환난  (2) 2024.12.21
사함  (8) 2024.12.19
시인  (4) 2024.12.18
성장 #좋은생각2024년12월호  (6) 202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