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023년5월13일 토요일
살인하지 말지니라[신]5:17
감옥에서는 도둑이 살인자를 나쁘게 헐뜯는다. 도둑은 말한다. "우리는 회개하고 손해를 보상해 줄 수 있어.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우리에게 도둑질을 당한 사람은 다시 돈을 벌 수 있어. 하지만 사람 목숨을 뺏는 것은 완전히 달라. 한 번 뺏은 목숨을 주인에게 되돌려 줄 수 없기 때문이지. 너희 살인자들은 정말 벌 받아 마땅한 죄인들이야."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다. 모든 죄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파괴한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명령에 저점 더 무감각해진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는 죄처럼 무책임한 것은 없다. 다른 사람 돈을 강탈하거나 명성을 더럽히는 죄를 가정해 보자. 그런 경우, 피해자가 모든 것을 잃지는 않는다. 이전 상태로 돌아갈 기회가 여전히 있다. 그러나 살인을 하면 그러한 여지가 전혀 없다. 희생자는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서고, 재판 받을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라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 살인죄는 다른 죄와 구별되는 죄, 곧 '죽음에 이르는 죄'이다.
그러므로 성직자들이 폭력을 묵과하거나 혁명을 선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피할 수도 잇는 전쟁 속으로 온 국민을 끌고 들어가는 정부도 옳지 않다. 유혈 시위를 하는 시위대도 마찬가지이다.
폭력 혁명이 대체 왜 필요할까?
소련 작가 타르시스가 쓴 '피난처에서 온 메시지'에는 공산주의자들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 당한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는 말했다. "나는 성경을 매일 읽기 시작했다. 그것이 세상에 위험하고, 손에서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책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공산당원들이 그 점을 간파하고 성경 배포를 금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성경에 담긴 지혜의 말을 일단 읽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혁명에 대해 코웃음을 칠 테니 말이다."
억압당하ㅗ고 가난해도 마음의 평화와 기쁨을 완벽하게 누릴 수 있다면, 장차 낙원에서 영원히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면, 피를 흘려서라도 이 덧 없는 세상에서 사회 질서를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그런 일에 참여하지 않는다. 기독교인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간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