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후2021년4월18일 주일낮예배

오예1 2021. 4. 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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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18~41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요4:24

찬송/4장

성시교독/교독문58시편133편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216장

기도/조선미권사

성경봉독/요한복음9:1~12

찬송/445장

설교/성서와 장애인/표세철목사

  1. 정결법에 따른 질병(피부병)과 장애

레위기는 성서의 일부이기에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정결과 부정의 문제 특히 질병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합리화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본문은 레위기 13-14장과 21장이다.

레위기 13-14장은 정결법에 관한 것으로써 예배 참여에 부적합한 피부병 환자의 처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레위기 21장 역시 정결법에 관한 것인데 여기의 관심은 제사장의 자격 조건에 집중되어 있다.

이 본문 역시 합당한 예배를 드리기 위한 제사장의 신체적 조건을 나열하고 있다.

제사장의 건강한 신체는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 역시 겉으로 흠이나 상처가 없고 정결해야 한다(레 22:17-25). 제사장이나 희생 제물 모두 겉으로 온전해야 하는 조건이 필수적이다.

피부병을 앓는 환자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법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예배에 참여할 수 없고 사람들과도 격리되어야 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인간이나 제물 모두 외형적으로 건강한 모습(정결)을 유지해야 한다.

그 정결이란 외형적으로 흠이 없는 것을 의미했다.

특별히 레위기 13-14장에서 다루고 있는 정결의 유지란 악성 피부병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 피부병은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옷이나 가구 등에도 피는 곰팡이를 의미했는데, 이렇게 피부병 환자를 부정한 사람(물건)이란 꼬리표로 사람들이 모이는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은 분명 위생적 배려를 종교적으로 바꾸어 강제적 성격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또 다른 경우는 외형적인 신체장애를 가진 제사장에 관한 문제이다.

제사장으로서의 자격 박탈 기준이 외형적인 신체적 조건이었다.

외모가 제사장이 제의를 거행할 수 있는 첫 번째 자격 조건이었다.

레위기는 성소나 제단에 가까이할 수 없는 신체적 결함으로 지적된 장애인들을 나열하고 있다.

맹인이나 다리 저는 자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

(레 21:18-20).

예화-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장애를 극복한 루즈벨트

1858년 뉴욕의 어느 가정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아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절었고 시력도 극도로 나빴습니다. 게다가 천식까지 앓아서 앞에 있는 촛불을 끌힘도 없는 호흡 곤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생명을 연장하여 드디어 열한 살이 되던 날 아버지는 이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아들아, 네가 가진 장애는 장애가 아니란다. 네가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이 너와 함께 한다면, 오히려 너의 장애 때문에 모든 사람이 너를 주목할 것이고 너는 진실로 역사에 신화 같은 기적을 남기는 놀라운 삶을 살 수 있단다.” 그 후 그는 23세가 되던 해에 뉴욕 주를 대표하는 의회의 의원이 되었고, 28세에는 뉴욕 시장 선거에 출마했습니다. 얼마 후에는 뉴욕 주지사가 되고, 부통령을 거쳐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에 미국의 신화를 재건하는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1906년에 노벨 평화상까지 수상하였던 이 사람은 바로 데오도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입니다. http://cafe.daum.net/yacop

  1. 세상 속으로!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초기 활동을 보면 대부분 치유와 기적 기사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수님께서 병자나 장애인이나 죽은 자들을 살리신 본문이 복음서에서 무려 70여 곳에 이르고 있다. 그 가운데 장애인(중풍, 시각 장애인, 지체장애인, 청각 장애인 등)에 관한 기사가 26개의 본문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당시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예수님은 장애인들을 만나고 접촉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오히려 예수님의 주요 관심이었고 예수님의 곁에 두었다. 예수님이 길을 걷고 사람들을 만날 때 예수님은 환자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치유 활동의 목표는 억눌린 개인으로 하여금 순결하고 온전한 상태로 회복되어 거룩한 공동체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대 사회가 만들었던 사회적 편견과 경계를 파괴하셨다. 예수님은 장애인을 치료함으로써 단순한 육체적 병이나 장애를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하다는 꼬리표를 떼고 궁극적으로 그들을 가정과 친구와 그가 속한 공동체로 돌려보내고 예배 공동체에 참여하여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케 하는 것이 예수님의 치유의 실제적 모습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은 단순히 의사이거나 기적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 치유자이다. 예수님은 이 점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2-13). 예수님에게 있어서 의인도 죄인도 모두 같은 사람이다. 건강한 자도 아픈 사람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예수님은 후자를 선호하시고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고 계시다. 이 원리는 장애인에게도 적용된다. 그에게 있어서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서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장애인이야말로 진정으로 예수님을 필요로 하고,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그들을 찾으신다.

예화-기적은 당신 안에 있다.

존스 홉킨즈 대학병원 재활의학 전문의 이승복박사가 저술한 자서전 ‘기적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 생긴다는 것이 책의 내용입니다. 그는 휠체어를 하는 장애를 안고 있는 의사입니다. 그는 8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이민 생활이 어려웠지만 체조에 흥미를 갖게 되어서 금메달리스트의 꿈을 키웠습니다. 미국 국가대표가 되기 전 한국 국가대표가 되어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습 도중에 불의의 추락 사고로 척추를 다쳐서 사지가 마비되는 장애인이 됩니다. 그는 병실에서 치료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바라는 삶으로 바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체조의 금메달은 놓쳤지만, 인생의 금메달에 도전하였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의학공부에 도전한 후에 고비가 많았으나 마침내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생활을 수석으로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장애의 몸으로 존스 홉킨즈 대학병원에서 당당히 전문의가 됩니다. 그의 놀라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친구들은 그를 슈퍼맨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랄 때에 능력이 나옴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바라며 절망 가운데서도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어려운 상황을 인내할 수 있었으며,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능력을 얻어서 기적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다이나믹크리스찬 김은혜목사

  1. 장애인은 하나님 선교의 주역!

한편 우리는 이 장애인이 시력을 회복한 후에도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그의 이웃이 그에게 예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도 모른다는 소극적 대답만 할 뿐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그의 대답은 예수님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 보인다. 성서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복음의 자유인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의 이름을 성서에서 찾을 수 없지만 그는 필시 초대 교회의 중요한 복음 증거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을. 인간은 누구나 개인차가 있다. 똑같은 개인일지라도 시간과 장소와 나이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가 생긴다. 단지 장애나 질병의 유무가 인간 가치의 척도이거나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진정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공존하되 상호보완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장애와 관련하여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기로 한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사 35:5-6a) 이 본문은 미래의 모습을 그린 이사야의 노래이다. 이 노래는 시각 장애인의 시력이 회복되고 억눌린 자를 풀어주는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누가에 의해 다시 확인되고 있다(눅 4:18-19). 그러나 이 모습은 종말론적 미래에 우리가 보고 싶은 궁극적인 희망이나 소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장애인의 장애가 모두 극복되고 모든 질병이 없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장애인은 무엇인가 부족하고 계속해서 수정 보충되어야 할 미성숙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모든 인간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이 우리의 썩어질 흙으로 된 제한적인 몸이 아닌 새로운 차원의 몸으로 모두 부활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는 벗어버려야 하거나 숨겨야 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장애는 장애대로 가치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다만 우리 인간의 기준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고 장애나 질병을 치료하고 향상시키기 위한 의학적 행위를 거부하고 그대로 살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경우에 따라 안경도 보조기도 휠체어도 필요하다. 더 좋은 기구나 의술이 발전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한 적극적인 투자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장애인 정책과 장애인 신학은 지금 여기에서 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의존하면서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우리의 꿈은 킹(M. L. King) 목사의 “내게 꿈이 있습니다”고 1963년에 노래한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자녀들, 장애인이나 비장인, 흑인이거나 백인,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 남자나 여자 모두 차별 없이 존엄과 안전과 행복의 삶을 꿈꾸고 있다.

봉헌/다같이

찬송/461장

교회소식/인도자

찬송/55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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