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159~173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고전15:19~20
찬송/160장
성시교독/교독문133부활절1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161장
기도/표사라집사
성경봉독/사도행전10:34~43
찬송/164장
설교/예수님의 복음/표세철목사
예수님이 붙잡히시던 날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모였다.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모였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 거듭났다. 성령의 오심을 체험하고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았다. 하나님이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신 이유는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게 하심이었다. 예수님의 증인,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심이었다. 부활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전하는 것을 주저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부활 증거를 제한하고 반대하는 권력자들 때문이었다. 권력자들은 권력의 힘으로 부활의 증인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생명의 위협 앞에는 사실도 거짓으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성령의 능력이 있을 때 사실이 사실대로 드러난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더 널리 확실히 증거 된다. 조직적인 방해꾼들이 있지만 결코 부활의 복음 전파가 위축되지 않는다.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으로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다. 예루살렘과 유다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파됨을 보았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보았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았고 하나님이 사람을 혈통과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심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 예수님은 화평의 복음이시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구원의 대상인 줄로 믿었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 믿음이 더 확고해졌다. 메시야가 오셔서 자기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라 믿었다. 유대인들은 겉으로 이방인과 함께 해도 속으로는 경멸하였다. 이방인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만약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다면 유대인들로서는 펄쩍 놀랄 일이다. 요나가 그런 경우였다. 유대인들의 생각과 의식이 기독교인들에게 침투하였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이방인이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이는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괴리이다. 괴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한다. 어떤 방법으로 괴리가 해결될 수 있을까? 혈통과 민족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생각이 깨지기 전에는 어렵다. 이것을 깨뜨리신 분이 곧 하나님이시다. 베드로가 깨닫고 입을 연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35절). 그렇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 가능하다(요1:13).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이 기회를 주셨다. 이것이 곧 화평의 복음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화해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화해되는 복음이다.
예화-나를 놔주세요!
미국 오클라호마 주립대의 한 연구팀이 동물의 지능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15세 된 침팬지에게 수화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갖은 노력을 다해서 140여개의 단어를 가르치고 이 단어들을 자기 생각에 따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해보았습니다. 이 침팬지가 수화를 통해서 어떤 의사를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랬더니 이 침팬지가 맨 처음으로 표현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Let me out.” 나를 놔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당신들 때문에 귀찮아 죽겠으니 나를 좀 자유롭게 해달라는 의사를 표현한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란 짐승도 원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놀라운 실험결과입니다.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어떠하겠습니까? 패트릭 헨리가 말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자유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이고 예수님 안에서의 자유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진리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소강석 목사/분당새에덴교회
- 예수님은 자유의 복음이시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 세례 요한이 왔었다. 세례 요한이 복음의 전주곡을 울렸다. 그리고 복음의 역사가 예수님을 통해 드러났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의 역사가 유대 전역에 퍼졌다. 지금 베드로에게는 복음이 이방으로 퍼져나갈 것이 느껴진다. 베드로가 만난 고넬료가 그 증거이다. 베드로의 이 깨달음이 역사에서 증명되었다. 복음이 전 세계로 퍼졌다. 전 세계 구석구석 복음이 전해졌고,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도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복을 얻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5:1)는 바울의 권면이 우리에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유의 복음을 전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예수님이 다니시며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고치셨다. 예수님이 눌린 사람들에게 영적 자유를 허락하셨다. 한 군데에서만 아니라 두루 다니시며 병자를 고치시고, 위로와 자유의 복음을 전하셨다. 죄의 권세와 사단의 권세가 더 이상 사람을 억누르지 못하게 되었다. 악한 권세가 예수님의 권세에 맞서지 못하고 도망갔다. 악한 것들에 의해 눌림을 받던 영혼들이 놓임을 얻었다.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 일을 이루셨다. 예수님이 자유의 복음으로서 일하셨다.
예화-가시고기
물고기 중 유일하게 둥지를 만드는 것이 가시고기다. 가시고기는 주둥이로 강바닥의 모래를 퍼내고 그곳에 둥지를 짓는다. 모래집에 수초까지 덮어 완벽한 산란의 보금자리를 꾸민다. 가시고기 수컷은 이때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다. 몸집이 큰 물고기들과 처절한 싸움도 불사한다. 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것을 넣고 꺼내는 작업도 잊지 않는다. 가시고기 수컷은 보통 15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채 알을 보호한다. 그리고 알이 부화할 무렵, 둥지 옆에서 장렬하게 죽는다. 영문도 모르는 치어들은 무심하게도 제 아비의 살을 뜯어먹으며 성장한다. 가시고기는 치어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최후에는 몸까지 내어놓는다. 그 부성애로 인해 가시고기의 부화율은 90%를 웃돈다. 오늘은 부활절. 예수님의 사랑은 가시고기의 그것과 같다. 예수님은 지금 한 영혼의 부화를 위해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쏟고 계신다. 철없는 치어 같은 인류에 ‘구원’과 ‘영생’이라는 값진 선물을 주기 위해….-임한창기자 hclim@kmib.co.kr
- 예수님은 부활의 복음이시다.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않았다. 중간에 방해꾼들이 치밀한 계획에 의해 복음을 방해 하였다. 그것이 곧 십자가였다. 훼방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없어지면 복음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훼방꾼들은 누구 하나가 없어지면 복음의 역사가 중단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훼방꾼들의 착각이 여지없이 빗나갔음을 만방에 알리셨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알리셨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이 스스로를 부활의 복음이시요, 생명의 복음이심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나타나신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먹었다. 제자들은 보고 경험하였으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결코 부정할 수 없다.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잠잠히 있을 수도 없다. 제자들이 부활의 복음을 전하였다. 예수님의 명령을 지켜 증인이 되었다. 증인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 아니라 제한된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증인됨은 먼저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부활의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은 세상 모든 인류이다. 그러나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먼저 믿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택하신 소수이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앞선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곧 우리들이다.
예화-평안을 얻는 길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기독교를 공인한 왕입니다. 그는 정치적인 갈등으로 아들 크리스파스를 죽인 후 죄책감으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신전에 사죄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신관은 로마 신전에서는 사죄의 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플라톤 철학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죄의 길이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골도바의 감독 호레야스를 통하여 십자가의 무한의 은혜를 듣고 제자가 되고 비로소 평안을 얻었습니다. 사죄는 하나님의 은혜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죄인인데 죄를 사함 받는 길은 은혜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평안이란 구원의 결과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확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게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안을 원합니다. 평안은 십자가의 사죄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이성희 목사/연동교회
- 예수님은 죄 사함의 복음이시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는 죄인을 매다는 형틀이었다. 십자가에 달렸다면 일단은 죄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도 죄인인가? 아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다(히4:15). 그런데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는가? 왜 예수님이 죄도 없이 죄인의 모습을 가지셨는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양심이 있는 사람 편에서 보면 매우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삼으셨다. 예수님이 속죄의 제물로 희생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인들의 죄가 용서받게 되었다. 제자들이 이것을 깨달았다.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요일3:5).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죄 사함의 복음이 되셨다. 알고 보니 죄 사함의 복음은 예전부터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희생됨으로 인하여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았다. 예수님이 죽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예수님이 생명 주시는 일에 전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으셨다. 그리고 우리의 재판장이 되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는 재판장이 아닌 용서하는 재판장으로 나타나셨다. 우리는 이 예수님을 믿는다. 믿는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가 있다. 부활의 아침에 우리에게 이 은혜가 주어졌다.
봉헌/다같이
찬송/165장
성찬식/다같이
교회소식/인도자
찬송/167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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