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후2021년2월21일 주일낮예배

오예1 2021. 2. 2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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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18~41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요4:24

찬송/2장

성시교독/교독문56시편128편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497장

기도/조선미권사

성경봉독/마태복음17:1~9

찬송/369장

설교/예수님의 변형/표세철목사

믿음은 전인적이다. 믿음은 사고방식이나 관념이 아니다. 믿음은 감정이나 느낌도 아니다. 믿음은 선행이나 도덕적 생활이 아니다. 믿음은 이러한 것들을 다 포함한다. 그리고도 믿음의 차원은 더 높다 믿음의 차원은 사람이 가진 생각보다 넓고 크다. 믿음은 한길 사람의 마음보다 더 깊다. 믿음은 사람이 가진 삶의 방식보다 더 광범위하다. 믿음은 사람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서 시작되었다면 종교현상에 불과하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엡2:8).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다.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에게 나타났다. 믿음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낸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을 심어준다. 그러므로 믿음은 전인적이다. 이 믿음을 가지는 방법은 우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와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믿음을 가지면 예수님을 닮는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삶 속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예수님을 체험하면 믿음이 자란다. 예수님이 뜻하신 바를 이룬다. 제자들이 그랬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다 예수님의 신비한 모습을 체험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이 자랐다. 우리 역시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예수님을 체험한다. 그리고 믿음이 자란다.

  1.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셨다.

예수님이 세 제자와 따로 시간을 내셨다. 다른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 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세 제자와 함께 했다는 것인데. 세 제자는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고 있다. 그러니 예수님의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예수님의 신비한 모습을 보는 기회도 가졌다. 함께 하면 장점도 단점도 다 알게 된다. 장점과 단점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드러난다. 목사와 가까운 성도들은 목사의 단점도 알고 있다. 목사의 가족도 목사의 단점을 알고 있다. 목사는 단점을 가져도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예수님은 완전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사의 속을 알면 실망할 일이 있을지 모르나, 예수님의 속을 알면 믿음이 더 자란다. 문제는 예수님과 함께 해도 예수님의 속을 모른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속마음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다. 말로 해도 잘 안되니, 예수님의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신다. 산에 오르신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변화의 모습을 보이셨다.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제자들에게 보여 진다. 제자들이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예수님의 겉모습이 변한 것을 보면 속도 알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변형되신 모습이 제자들에게 보여 졌으니,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마음이 달라질 것이다. 예화-우리의 마음 새롭게 하기1

한 목사님이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지난주 우리가 드린 예배에 새 찬양을 불러서 분위기를 망쳤습니다. 지난주 불렀던 그 새 찬송의 음악은 신을 모독하는 것 같고 교회가 아니라 세상 모임에서나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떠한 노래였기에 그 성도로 하여금 예배에서 은혜를 받기는커녕 화까지 나도록 만들었겠습니까? 1874년에 한 성도를 그토록 화나게 하였던 그 노래는 당시 나온 복음성가 집에 들어있던 복음성가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매우 애창하는 찬송인 ‘주 예수 넓은 사랑 그 크신 은혜를 나 힘써 전파함은’(497장)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 주신 것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임성빈 목사/장신대 교수

  1. 제자들은 신비 속에 살고 싶다.

제자들은 신비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분위기이다. 신비한 분위기 속에 깨어나고 싶지 않다. 제자들이 초막 셋을 짓고 거기에 모세와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살고 싶다. 신비함 속에 살고 싶은 것이다. 달콤한 꿈을 꾸는 것과도 같고, 그 꿈에서 깨어나기 싫다. 믿음 생활을 마치 이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일상생활의 염려와 자질구레한 일들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것이다. 기도라는 명목으로 산이나 조용한 곳에서 혼자 명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을 우리는 신비주의라 부른다. 어떤 이들은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고 혼자만 학처럼 고고하게 지내면 된다는 식으로 산다. 누구든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그런 것이 아니다. 믿음에는 신비한 요소가 있으나 신비함 자체가 믿음은 아니다. 신앙의 깊은 경지를 체험하는 것이 믿음을 자라게 하는 요소일 수는 있으나 체험 자체가 믿음의 전부는 아니다. 성령의 놀라운 힘입는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으나 그것으로 믿음을 완성했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믿음은 산 위의 요소도 있으나 산 아래 요소도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체험해야 한다. 그러나 체험 자체를 목적으로 삼으면 안 된다. 체험은 예수님을 경험하고 그분을 닮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화-우리의 마음 새롭게 하기2

주일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이 한 성도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목사님, 제발 이제 새로운 찬양은 더 부르지 맙시다. 우리가 늘 부르던 찬양이 어디가 잘못되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교회에 오는 것이지 새 찬양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특히 지난 주일예배는 정말 참을 수 없었습니다. 가사는 그런 대로 괜찮았지만 가락은 아주 나빴고 화음도 잘 맞지 않는 찬양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찬양을 예배에서 불렀기 때문에 그 성도님이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그 찬송은 오늘날 우리에게 큰 은혜를 끼치고 있는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369장)였습니다. 그러나 1890년에 이 은혜로운 찬송이 한 교회에서 처음 소개된 주일에 한 성도는 너무 화가 나서 이와 같은 편지를 목사님에게 보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화입니다.-임성빈 목사/장신대 교수

  1. 제자들은 말씀을 들어야 한다.

제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들의 요구가 지나친 것도 아닐진대 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그것이 예수님의 속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 위에 사는 것만으로 믿음이 완성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위에서의 경험도 필요하지만 , 보다 중요한 것은 산 아래에 예수님과 제자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모르면 고집 센 사람이 된다.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고집만 내세우고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신비주의자들이 고집 세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려 들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강하게 경고하신다. 제자들에게 들려진 말씀을 들으면 알 수 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5절). 제자들에게 신비한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이 소리를 듣고 두려워 떨었다. 주변에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납작 엎드렸다. 믿음이란 내 생각이 있어서 예수님의 생각에는 접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께 요구 사항이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의 요구 사항에 양보해야 한다. 말씀을 들으면 그렇게 된다. 무엇을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예화-비전 리더십

한 소형 비행기가 비행 중 엔진 고장으로 추락 직전의 상황에 처했습니다. 승객은 4명인데 낙하산은 3개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조종사와 과학자가 핑계를 대며 낙하산을 타고 먼저 탈출했습니다. 이제 비행기에는 목사와 어린아이만 남았습니다. 목사가 어린아이에게 “얘야, 난 그만 천국에 갈 테니 네가 살거라. 대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해다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린아이가 “목사님! 우리 함께 내려가요”하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서두르라고 하자 어린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목사님! 그것도 못 보셨어요? 과학자가 타고 내린 건 제 보이스카우트 가방이었어요.” 여기서 여러 지도자상을 살펴본다면 조종사는 있으나마나 한 지도자요, 과학자는 자기만 살려다 먼저 죽은 지도자요, 목사는 희생의 지도자이며, 어린아이는 미래와 비전을 보는 지도자의 모형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희생과 비전의 지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희생할 줄 알고 비전을 바라보며 섬길 때 교회가 달라지고 사회가 변화될 수 있습니다.-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1. 제자들에게 체험을 말할 기회가 올 것이다.

엎드려 떠는 제자들이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느낀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셨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은 후 제자들이 일어날 수 있었다. 예수님의 손길은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손길이다. 위로하는 손길이며, 일상생활에서 믿음의 일을 감당하도록 인도하는 손길이다.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예수님의 본래 모습이 보이고, 모세와 엘리야는 보이지 않는다, 재미나는 꿈을 꾼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수 있다. 예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이 경험을 말하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예수님도 그것을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할 기회가 올 때까지 조심하라고 이르신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9절). 부활이 본 것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후에 신비체험의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비한 체험과 예수님의 부활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부활로 믿음의 도약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에게도 믿음 체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로 그 체험이 완성 되어야 한다. 부활을 믿는 것이 먼저이다. 신비한 체험은 부활을 믿게 하는 요소이다. 주님의 체험은 부활과 관련되어 있고, 부활의 증인이 되게 하는 요소이다.

봉헌/다같이

찬송/370장

교회소식/인도자

찬송/54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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