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130~133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요4:24
찬송/1장
성시교독/교독문121주현절1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132장
기도/지석임사모
성경봉독/마태복음3:13-17
찬송/80장
설교/세례를 받으신 예수님
통과의례라는 것이 있다. 통과의례란 출생, 성인, 결혼, 죽음 등 인간이면 누구나 한번은 거쳐야 하는 인생의 각 단계에서 행해지는 의식을 말한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인생 고비가 있으며, 이 고비에는 반드시 의례가 수반된다고 하여 통과의례라 한다. 신앙인에게도 통과의례가 있는 것 같다. 세례식이 대표적이다. 세례식은 구원받음을 확인하는 예식이다.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임을 하나님과 성도 앞에서 선포하는 의식이기도 한다. 우리의 세례를 통과의례로 보아야 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통과의례 이상으로 보아야 한다. 의식보다는 그 안에 담긴 영적 의미가 다르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 우리는 거듭나야 하지만 예수님은 거듭날 필요가 없으신 분이다. 오히려 거듭날 것을 가르치셨고, 거듭남의 진리를 알려주신 분이다. 거듭남의 근원이 되신 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세례는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다. 우리의 세례가 통과의례가 아닌 바에야 예수님은 더욱 그러하다.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을 보면 우리의 세례 받음의 의미도 드러난다. 우리도 세례 받음이 통과의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고 세례를 받은 시간이 은혜를 받은 시간이었음을 알게 된다.
- 사람들과 같아지셨다.
수많은 사람이 세례요한 앞으로 왔다. 세례를 받기 위해 온 것이다. 회개하라는 외침을 듣고 왔다는 것은 회개했다는 의미이다. 회개를 자신에게 적용했다는 의미이다. 회개하고 새로운 생활을 하라고 외쳤다.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눅 3:11-14).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 를 전하였다(막 1:4). 그런데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왔다. 예수님이 죄 사함의 세례, 회개의 세례를 받으러 오신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이란 말인가? 예수님이 회개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죄인의 모습으로 오셨다. 세례는 예수님이 완전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죄인에게 죄 사함과 회개가 필요한 것을 아시고 몸소 먼저 세례를 체험하셨다.
예화-어린아이 같은 믿음
1905년경 평양 지방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나이 칠십이 넘은 노인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며느리도 교회로 인도했고, 두 아들도 믿게 만들었습니다.
노인은 세례를 받고자 했습니다.
그 때에는 세례 받는 규정이 까다로웠습니다.
선교사는 노인에게 특별히 봐주어서 십계명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만 외울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칠십 노인은 이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노인은 열심히 외우려고 노력을 했으나, 정작 선교사 앞에서는 잊어버리고 외우지를 못했습니다.
그 바람에 노인의 세례는 2년이나 늦어졌습니다.
3년째 되던 해 세례 문답하려고 온 선교사는 노인에게 사도신경을 외어 보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노인은 "목사님, 갓난아이가 주기도문, 십계명을 아오?
영아 세례 주듯이 나를 어린아이로 여기고 세례를 주십시오." 하였습니다.
자신을 어린아이로 여기고 세례를 베풀어 달라는 칠십 노인의 믿음을 보고 선교사는 두 말없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http://cafe.daum.net/yacop
- 의를 이루기에 합당한 것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예비하러 온 사람은 주인공이 등장하면 퇴장해야 한다. 예수님이 나타나면 세례요한은 하던 일을 접고 사라져야 한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러 오신다. 요한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높으신 분이 낮은 사람, 주인이 종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누가 보아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당연히 세례 요한이 사양의 의사를 나타낸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4절). 세례 요한은 자기와 예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했다. 예수님이 대답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5절).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것은 의를 이루시는 일이다. 의를 이룬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완성하러 오셨다. 세례 요한은 예언의 완성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오셨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심으로 자신이 예언의 완성임을 세상에 드러내신다.
예화-담배광고를 거절한 린드버그 대위
린드버그 대위가 비행기로 세계일주를 하고 프랑스에 왔을 때 그를 환영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에 곁에 왔습니다.
그때 담배회사 사장이 와서 담배 한 대를 주면서 광고에 쓰려고 "사진 한 장만 찍으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했습니다.
그때에 린드버그 대위는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요. “
그러면 담배를 물고만 있으라. 그래도 5만 달러를 주겠소."
그때 "나는 세례 받은 사람이요"하고 거절했습니다.
이 기사가 다음날 프랑스 일간지에 대서특필 되었고 이 기사를 본 많은 성도들이 감동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성도들에게 필요합니다.-http://cafe.daum.net/yacop
- 성령이 임하는 시간이 되었다.
세례 요한은 어쨌거나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룬다는 데 모양새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푼다는 것이 부당한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는 자신의 뜻을 접는다. 예수님이 말씀에 순종하여 세례를 베풀기를 허락한다. 이 세례식은 세상의 다른 어떤 세례식보다 장엄했다. 다른 어떤 세례식보다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의식의 장엄함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성령이 임하였으므로 장엄하다. 통과의례로 보는 중요함이 아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였다.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함을 보셨다(16절). 이 세례는 물의 세례였으나 실상 성령의 세례였다. 물세례는 의식이지만 성령 세례는 영적 체험이다. 성령이 함께 계심이 증명되었다. 이로써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 분임(눅 3:16)이 증명되었다. 세례는 단순히 교회의 회원이 되는 의식이 아니다. 세례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외적인 교회회원에 머물지 않는다. 내적인 회원 곧 교회의 일꾼이 된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일한다.
예화-거짓말의 습관
어떤 목사님이 어느 지방에서 목회를 하실 때에 20년 동안 무당질한 김세현씨에게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였다고 한다.
김세현씨는 처음부터 구신을 철폐할 뿐더러 무당의 소유물 전체를 불 놓았다. 그리고 그 후부터 교회를 잘 나올 뿐 아니라 예수님을 잘 믿어 교회 나온 지 일 년 만에 학습, 세례 다 받았다.
그리고 찬송도 잘 부르고 기도도 잘하며 성경도 늘 읽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결점은 거짓말을 잘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이 어느 날 그 집에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린 후에 목사님이 아주머니, 아주머니는 진실한 신자이나 한 가지 틀린 것이 있어요. 한즉 그가 반문하기를 무엇이 틀린 것입니까? 할 때 목사님은 거짓말을 일수로 잘하는 것이 틀린 것 이예요 한즉 그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 내가 20년 동안 사람을 속여먹었는데 내가 왜 거짓말을 못 하겠소 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으면 20년 동안 거짓말하던 잘못된 습관도 버려야 진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
- 말씀을 듣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나타나셨다. 예수님의 세례가 하나님의 뜻이었고, 하나님이 인정하심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7절). 하나님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셨다. 하나님이 예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하셨다. 예수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감정을 분명히 표현하셨다. 통과의례라도 이런 통과의례가 있겠는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을 통과의례의 범주에 둔다면 하나님의 뜻을 인간의 상식으로 해석하려는 짓이다. 하나님의 일을 사사로이 해석할 수는 없는 일이다(벧후 1:20). 세례는 사람 앞에서 행하지만 실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 세례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일이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분명히 선언하는 일이다. 세례는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시간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다. 세례는 아주 신비한 하나님 체험의 시간이다. 예수님에게 이처럼 신비했다면 우리는 어떨까? 예수님의 세례가 꼭 예수님에게만 적용되어야 할까?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므로 오직 예수님에게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의 세례 역시 놀라운 영적 체험의 순간이다.
봉헌/다같이
찬송/84장
교회소식/인도자
찬송/53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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