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후2020년12월27일 임직감사예배

오예1 2020. 12. 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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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106~129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요4:24

찬송/126장

성시교독/교독문107임직식1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127장

기도/표세종집사

성경봉독/잠언29:18

찬송/128장

영상/주님의 은혜

설교/꿈을 가져라/표세철목사

누군가는 꿈을 가리켜서 인생의 사탕과도 같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꿈을 가져야 현재에 안주하지 않게 되며, 목표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힘도 얻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꿈이 있었으므로 안정된 삶의 터전을 떠서 헤브론으로 이주하였습니다.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을 결행하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가능성의 문이 열린 시기이므로 꿈을 갖되 큰 꿈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에게 꿈이 왜 필요한 것일까요?

예화-한 수탉의 교훈

미국 애리조나주의 한 농장에 강렬한 허리케인이 불어 닥쳤습니다. 허리케인은 집과 농작물 그리고 가축들까지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농부는 절망하여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때 무너진 닭장 속에서 벼슬이 찢기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수탉 한 마리가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습니다. 수탉은 날개를 퍼덕이며 무너지지 않은 담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목청껏 소리를 쳤습니다. “꼬끼오” 농부는 이 모습을 보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래 다시 일어나자. 나도 하늘을 향해 울고 있는 저 수탉처럼 다시 일어나자.’

잿더미 속에서 수탉이 울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주신 본성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이 오면 하나님께 울부짖도록 하는 본성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성도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르짖을 수 있는 본성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본성을 찾을 때 하나님은 분명히 회복을 주십니다.(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1. 꿈은 목표를 정하는 일이요, 방향을 정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에서 달리는 자가 일정한 목표가 없다면 그 사람의 달음질은 향방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열심히 뛰고 빨리 달아날지라도 결과는 똑같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집니다. 목표가 없다면 일생의 모든 수고가 헛것이 되고 맙니다. 목적지가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우리는 "떠돌이"라고 말합니다. 생의 목표가 없거나 불분명한 사람도 따지고 보면 떠돌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꿈을 먹고 사는 이들은 결코 떠돌이가 되지 않습니다.

도달해야 할 분명한 목적지가 있다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더러는 꿈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산다는 식으로 말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철학은 새로운 목표에 도달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의 구차한 변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자신의 삶이 위대해지기를 원한다면 크고 원대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분명하고도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또한 꿈은 목표를 설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달음질의 방향도 견고히 확정짓게 해 줍니다. 목표와 방향은 거의 일치하는 개념 이기는 하나 목표가 확실하다고 방향은 반드시 그쪽으로 잡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이와 같은 실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달음질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잡는다면 그는 결국 인생을 몽땅 허비하고 마는 것입니다. 꿈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고귀한 삶을 원하는 이들은 목표가 설정되면 비록 어려움이 많이 따를지라도 방향은 그 쪽으로 향하게 합니다. 파도가 무섭다고 바다에 나가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훌륭한 선장이 되기란 불가능하듯이 꿈을 먹지 않는 사람도 훌륭한 삶을 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희망찬 새해를 위해

6·25전쟁 때 일입니다. 전쟁터에서 온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한 종군기자가 죽음의 공포를 가장 많이 느끼고 있던 한 흑인병사에게 녹음기를 들이대며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지금 당신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 대답은 전 세계로 타전되어 아주 유명한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대답은 “기브 미 투모로우”(Give me Tomorrow)였습니다. 그 병사는 오매불망 내일을 희망하였고 내일이 있기만을 학수고대하였습니다. 내일이 없는 자는 가장 비참한 사람이요, 비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내일이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둡고 힘들지라도 희망찬 내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교회에 나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신년 축하예배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기도와 함께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도 송구영신 예배와 함께 복되게 시작하십시오.(소강석 목사-분당 새에덴교회)

 

2.꿈은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에서 초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이들은 이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좌절하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강인한 정신력 혹은 의지 등으로 이것을 극복해 나간 다는 점이 다름니다.

우리 주위에는 순풍이 돛을 달고 출항한 배처럼 출발은 잘했으면서도 예기치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절망하는 사람 들이 있습니다. 이는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현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뒤로 물러서지 않습니다. 도달해야할 목표가 눈에 보이기 때문에 조절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꿈이 있는 사람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부푼 기대 속에서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광야에서 생을 마감한 이들이 상당수에 이릅니다. 성경은 40여 년에 걸친 광야 생활에 서 출애굽 제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죽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이 같은 현상이 빚어졌을까요? 그들에게 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래보다 현제를 중시했고, 꿈을 먹는 것보다 현실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을 더욱 시급하게 느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꿈을 먹는 이들은 여하한 경우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동일한 상황 가운데 처해 있었음에도 그들은 약속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예화-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가져라.

미국 미시간 주 성 요셉고아원에 불량 소년이 들어왔습니다.

소년은 원생들과 늘 싸움을 일삼았습니다.

베라다 선생은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그 소년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가져라."

그러나 소년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고 결국 고아원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소년은 고아원에서 쫓겨난 후에 베라다 선생의 가르침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 소년은 피자가게에 취직 해서 열심히 일을 배워 피자를 11초에 반죽하는 탁월한 솜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소년의 마음 속에는 베라다 선생이 심어준 신앙으로 가득 찼습니다.

소년은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피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바로 도미노피자(Domino's Pizza)입니다.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모너건(Thomas Monaghan)입니다.

토머스는 피자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프로야구 명문구단인 디트로이트(Detroit Tigers)를 운영하면서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업에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베라다 선생님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능력을 주십니다. 꿈을 크게 가지십시오." http://cafe.daum.net/yacop

 

  1. 꿈은 형통한 자가 되게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은 꿈이 있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꿈을 먹는 소년 요셉이 비록 노예의 신분으로 애굽에 팔려갔으나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사 형통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꿈을 먹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역사로 형통한 자가 됩니다. 물론 그 과정이 어려움이 전혀 없을 수는 없겠으나 실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꿈은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공상 따위와는 전혀 다릅니다. 그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기 때문에 헛되이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이 점을 항시 염두에 두고 가능성의 다리를 놓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꿈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합니다. 애굽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그 주인인 보디발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같이 요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외모나 인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었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꿈을 먹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한 방법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즉 그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로부터 신뢰하고 존경할 만한 대상으로 인정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나타내고자 애쓴다고 형통한 삶을 살게 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높여 주실 때에 비로소 그의 이름이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꿈이 없이 사는 이들보다 더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은 없을 것 입니다. 오늘의 부요보다 더 중요하고 귀한 것은 미래이며 꿈입니다.

현재의 여건이 어려워도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큰일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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