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97~129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눅3:4~6
찬송/111장
성시교독/교독문117구주강림3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112장
기도/지석임사모
성경봉독/히브리서 4:12,13
찬송/113장
영상/선물
설교/살아 있는 말씀/표세철목사
1600여 년에 걸쳐 40여 명의 저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의 역사 속에서도 태양처럼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이 책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구속사건을 중심으로 통일된 사상과 목적이 명확하게 제시되고 있는 것도 성경만이 지닌 특성입니다. 그러나 병든 눈과 메마른 영혼으로 성경을 보면 성경은 모순투성이요 비합리가 낳은 하나의 낡은 유물에 불과하게 보입니다. 본문은 그러한 병든 영혼을 깨우는 종소리이며 눈을 뜨게 하는 안약이며 불신과 편견을 쪼개는 칼날을 우리에게 소개해 줍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라고 선언합니다. 현대 교회 많은 신자들이 권능을 얻고자, 특별한 은사를 얻고자, 혹은 실생활의 열매를 위하여, 또한 자기의 완고한 심정을 녹일 수 있는 변화의 능력을 사모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삶의 변화를 얻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하지 않고, 말씀의 능력을 힘입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신론 철학자 볼테르는 "앞으로 100년 안에 성경은 낙후되고 천박한 책으로 전락될 것이며 박물관 골동품 진열장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 볼테르의 집은 성서공회 사무실이 되었고 성경은 1,290여 개 방언으로 번역되어서 매년 수백만 부씩 판매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화-성경의 인물을 따라서
한 목사님에게, 이제 갓 운전면허를 취득한 아들이 와서 말했다.
“아버지, 이제 저도 면허를 취득했으니 차 좀 빌려 주시면 안 돼요?”
아들의 말에 목사님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 좋다! 단 그러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하자! 네가 학교 성적을 끌어올리고, 하루에 조금씩 성경공부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깎는다면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와서 차를 빌려달라고 말했다.
“아버지! 오늘 차 좀 빌려 주세요!”
그러자 목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학교 성적도 오르고 매일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런데 머리는 아직도 깍질 않았구나. 왜지?”
그러자 아들이 이상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제가 그동안 성경공부를 좀 했는데요 아버지. 삼손이나, 모세,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까지도 머리를 기르고 다니셨더라구요! 그래서 뭐...”
그러자 목사님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렇지! 맞아. 그런데 말이야 그 분들은 어디든 두 발로 걸어 다니셨단다! 그만 나가 보거라!”
-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역사는 "하나님이 가라사대"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적어도 10번 이상 반복되고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은 산 말씀 창조의 힘입니다. 베드로는 성경을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벧전 1:24).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시 33:9)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어찌하여 말씀 한 마디에 천지가 창조되고 역사가 움직이고 생명이 좌우될 수 있습니까? 그 이유는 말씀하시는 분이 실존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비참한 멸망의 상태에서 구원코자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랜 시대 속에서 불변하며 살아 역사할 뿐 아니라 뇌성보다 위엄 있고 날선 검보다 예리하고 봄빛보다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창조의 능력이 있어 그 말씀을 접하는 사람마다 구원의 새 사람이 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름답고 선한 인간이 되고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충성과 영혼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사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는 말씀이며 죽은 것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 운동력이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다는 것은 생명력이 있다는 뜻이며 아름다운 생명체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에스겔 37장에서 우리는 생명적 운동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으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생기가 어떻게 왔습니까? 여호와의 말씀에서 왔습니다. 즉 말씀이 있는 곳에 생기의 바람이 왔고 생기의 바람이 불매 마른 뼈들이 살아 일어났습니다. 영혼 운동, 생명 운동, 각성 운동, 새 시대 운동, 새 사회 운동은 말씀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말씀은 믿음으로 받는 사람 속에서 역사하는 힘, 바로 그 운동력이기 때문입니다(살전 2:13).
회개 운동도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딤후 3:17). 흔히 사람들은 그럴싸한 구호를 운동의 중심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모든 새롭게 하는 운동, 특히 영혼을 소성케 하는 운동, 생명을 살리는 운동, 정신을 변화시키는 운동의 구심력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프리카 우간다의 왕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을 예방하고 어떻게 정치를 잘해서 과거 해적의 나라였던 영국이 이렇게 신사적이고 질서 있는 번영을 이루게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은 책상 위에 놓인 성경을 가리키면서 이 책의 힘으로 우리 영국이 변하여 이렇게 되었다고 대답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성경을 읽고 그들의 심령이 하나님 말씀의 빛과 능력에 지배받게 될 때 그 나라 국민성이 개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문호 위고는 "영국은 두 책을 가진 나라인데 그것은 셰익스피어 전집과 성경이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영국인이 썼으나 성경은 영국인을 만든 책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들어간 곳마다 어두움이 물러가고 미신과 야만이 사라지고 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경의 빛을 받은 나라마다 과학이 발달하고 예술이 진흥되며 경제 부흥이 일어납니다. 최상의 문학 작품, 최상의 조각품, 위대한 예술과 음악, 인류를 행복하게 하는 정치 경제가 성경에서 발상되고 영향 받은 것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 말씀이 들어간 곳마다 높은 덕과 아름다운 윤리가 실천되었습니다. 모든 박애 정신, 자선 사업(고아원, 양로원, 병원), 적십자 운동, 동식물 애호와 인도주의 운동이 성경의 신비한 운동력으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을 위대하게 변화시키는 운동력이 있습니다.
- 혼과 골수를 찔러 쪼갭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개조시키고 인격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첫째, 칼날같이 예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상적 부분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 관절 속에 들어 있는 골수까지도 쪼개고 잠복되어 있는 죄악을 드러내고 인간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말씀입니다. 물론 살기 위해서는 아픔을 참고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치료받지 않은 심령에게는 멸망과 징계의 채찍이 옵니다.
둘째, 사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생각을 아시고"(마 9:4, 눅 6:8, 요 2:25). 인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은 도피 불가능, 거역 불가능, 저항 불가능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내면의 깊은 골수를 치료하십니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죄악과 불의를 부숴뜨리는 불방망이와 같습니다(렘 23:29-31).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도 길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은 많은 학문에 통달한 사람이었으나 방탕의 길에서 헤맸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에도 아랑곳없이 방탕한 길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가운데 놀라운 변화를 받았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2-14). 그는 회개의 눈물을 강같이 흘렸고 그때부터 진실한 신자가 되어 성자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라볼드 잉그솔이라는 무신론자는 류웰리스 장군에게 기독교를 박해하는 책을 쓰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성경을 읽어야 반대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는 하나님을 보았고 큰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유명한 <벤허>라는 책을 썼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으며 인격의 변화를 이루었습니까? 얼마나 많은 헌신자, 봉사자들, 순교자와 충성된 종들, 그 많은 죄인들과 악인들, 강도와 창녀와 버림받은 자들이 십자가 그늘 밑에 나아가 눈물을 흘렸으며 그들의 삶이 돌변했습니까? 실로 성경은 능력의 책이요, 기적의 말씀입니다.
어두운 밤길에 등불과 같은 말씀!
망망대해에서 나침반과 같은 말씀, 봄 동산에 햇빛 같은 말씀을 부지런히 읽는 국민이 되어서 죽은 영혼이 살고 행복한 인생, 번영하는 민족이 되게 하십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옵니다. 따뜻한 봄빛 같은 생명의 말씀, 영혼을 소성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말씀을 우리 모두 듣고 읽고 붙들고 삽시다. 말씀을 붙들고 사는 성도의 마음에 환희가 있고 눈에는 영원이 보이고 영혼에는 밝은 빛이 있고 그 앞길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봉헌/다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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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소식/인도자
찬송/115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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