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7월26일(040725)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마태복음 10:34-42
제목-주님께 합당한 자
예수님을 믿는 것이 장려되는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믿음을 반대하는 시대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장려되는 시대보다는 반대하던 시대가 훨씬 더 많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믿음이 시작되던 시대에는 주변에서 믿음을 반대한다. 좋은 말로 제지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위협과 핍박이 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 핍박하면 그래도 참을 수 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핍박하면 참기 어렵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때가 영적으로 가장 살아있는 때이다. 핍박받을 때이니 더 기도한다. 핍박하는 사람들을 용서하며, 믿음의 신비를 깨닫는다. 이런 영적 체험은 믿음을 가지지 못하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핍박 중에도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천국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천국을 믿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도 참을 수 있다.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서 믿음은 새 인생의 출발점이다. 믿음이 새 인생의 기분이다. 새 인생을 살게 되는데 주변으로부터 반대가 없다면 그것도 이상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반면에 믿음이 장려되는 시대에서는 영적 깊음을 찾기 어렵다, 출세하려고 믿고, 사회적 안정을 찾으려고 믿다 보면 신앙인이 습관적으로만 믿을 뿐이다. 이런 시대에는 잘못된 믿음들이 나타난다. 이 경우 믿음은 결코 새 인생이 아니다. 새 인생으로 살려면 잘못된 믿음에 대하여 반성하고 아파하는 영성을 가져야 한다.
예화-흑사병도 이겨낸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주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약 10만 명의 성도가 있었는데 그들은 1만5천의 불행한 자의 생활을 담당하였습니다.
또 후에 이곳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많은 인명이 손상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것이 기독신자들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은 탓이라는 말이 돌아가 이 때문에 신자들은 심한 핍박을 받았습니다.
모든 불신자들이 이 병이 무서워서 앓는 자와 죽은 자의 시체를 그냥 내버리고 도망을 했을 때에도 신자들은 결사적으로 마지막까지 머물러 있어서 병자를 구호하며 시체를 매장하였습니다.
그 후 도망했다가 다시 돌아온 자들이 기독신자들이 한 업적을 보고 놀라지 않은 자가없었습니다. 이러한 흑사병의 유행은 갤러스(Gallus)황제 때에도 있었는데 당시 카태이지 교회는 사이프리안의 지도하에 그들을 간호했으며 매장하였습니다.
유세비어스 당시에는 핍박이 너무 심하여 어떤 교우가 재산 몰수를 당하면 교우들이 서로 생활 책임을 졌고, 다른 데로 피신하여 가면 목사의 소개서 한 장으로 으레 그들의 생활을 책임졌습니다. 2세기초의 신학자 터툴리안의 변증론의 일 절을 보면
“보라 저들이 어떻게 사랑하였는가를! 저들이 서로 죽기도 사양치 않는구나 저들은 아내 외에는 무엇이나 공동으로 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불신자들이 경탄함을 말하였고, 그들은 또한 불신자들을 향하여 “당신들은 우리를 핍박하나 우리는 당신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당신들의 신을 위하여는 아무 것도 아니하나 당신들의 빈궁한 자는 우리가 구제하노라”하였다 합니다.-http://cafe.daum.net/yacop
1.가장 가까운 것을 버려야 한다
선교가 시작되는 곳에서 처음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고난을 당한다. 고난 때문에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믿음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는 사람들도 있다. 마귀는 어떻게든지 사람들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획책한다. 핍박으로 믿음을 포기하게 한다. 그것도 안 되면 유혹으로 포기하게 한다. 그것도 안 되면 게으름으로, 풍요로 포기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환난으로 포기하게 한다. 대 환난의 시대에 성도들의 믿음이 증명될 것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 13:10). 예수님을 믿으면 일시적으로 평화가 사라진다. 예수님은 믿음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35-36절). 가족 간에 불화가 있다니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거짓이 진리를 공격하고, 불신이 믿음을 공격한다. 이것도 불화로 비쳐진다. 그러나 새 인생을 시작하려면 이러한 불화를 각오해야 한다. 즉 내게 있어서 소중한 것, 가장 가까운, 가족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우선할 수 없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37절).
2. 자기도 포기해야 한다
자기를 위해 가족을 버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이혼하고, 자녀를 내팽개치는 부모들이 있다.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족과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사업에 실패하고 노숙자로 전락한 아버지, 궁핍을 견디지 못해 가출하는 어머니들이 있다. 오죽했으면 그러랴 싶어 동정할 수 있으나 결코 찬성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기들만 잘 살려고 부모를 버리는 자녀들도 있다. 치매에 걸린 부모를 길에다 버리는 비정한 자식들도 있다. 인생을 자기들 기준대로, 자기들 편리한 대로만 사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인생을 잘 살아보려고 가족을 버리고, 남을 버린다. 그러나 주님이 제시하는 새 인생은 그렇지 않다. 새 인생은 가장 먼저 자기를 버린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39절).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자기 십자가란 자기를 부정하는 일이다. 자기 고집과 알량한 자존심도 버려야 한다. 심지어는 목숨을 버릴 각오마저 해야 한다. 예수님이 먼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다. 목숨을 버릴 각오가 되어 있다면 오히려 얻을 것이다. 이것이 새 인생의 묘미이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39절)
예화-산을 옮길 만한 믿음
알라스카의 스티브(Steve)라는 청년이 처음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는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길 수 있다" 라는 설교를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집의 뒷산이 겨울마다 눈사태가 일어나 그로 인해 힘이 많이 들었는데
이 설교를 들으니 귀가 솔깃해집니다.
자기도 그런 일을 해보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산이 옮겨지는 믿음을 얻기 위하여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식이 목사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목사님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 설교는 하였지만 아직까지 산을 옮겼다는 기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티브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할 것이 너무도 뻔하기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그를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스티브의 기도는 그 후 계속되었고, 목사님의 마음은 다급해졌습니다.
그런데 40일째 되던 날, 스티브가 싱글벙글하며 목사님을 찾아와 말합니다.
"목사님, 20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산을 번쩍 들어 옮기는 것이 아니라, 기계로 옮기시는 것 같습니다.
새로 생긴 고속도로에 흙이 필요하다면서 큰 트럭들이 매일 흙을 계속 실어감으로 우리 집 뒷산이 거의 다 없어져 갑니다."-http://cafe.daum.net/yacop
3.주님을 영접해야 한다
새로운 인생은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다. 새 인생은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선물이다. 새 인생은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시작된다. 새 인생은 예수님 안에 있을 때 비로소 환히 열린다. 주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먼저는 주님을 전하는 사람 곧 전도자를 만나야 한다. 누가 전도자들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새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어느 제자이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그 시간부터 새 인생이 시작되었다. 새 인생을 시작한 제자를 만나는 사람에게 새 인생의 길이 열린다. 새 인생을 시작한 제자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새 인생의 길이 보인다. 전도자를 영접하는 것에 따른 상급이 있을 것이다. 영접하는 것이 새 인생의 시작이요, 상급은 새 인생의 결과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41절). 마음을 열어 예수님을 모시면 예수님이 새 인생을 선물로 주신다. 예수님이 그의 안에 계셔서 주인이 되어 주신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4. 주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사역을 한다.
새 인생을 아는 사람은 새 인생을 산다. 새 인생이란 곧 주님을 위해 일하는 인생이다. 전에는 나만 위해 일하는 인생이었다. 남이 존재하는 것도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은 가족의 존재도 자기의 행복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심지어는 믿음조차도 나의 부귀와 영화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새 인생이 되면 바뀐다. 나의 존재는 가족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나의 존재는 주님의 기쁨을 위한 것이다. 가족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주님이 기뻐하시면 나도 기뻐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주님을 외면하지 못한다. 이웃도 외면하지 못한다. 이웃에게서 주님의 형상을 찾는다. 이웃에게 나누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다. 나누면서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직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려 한다. 나만 위해 살던 인생이 주님을 위해 사는 인생으로 바뀌었다. 나에게 생명을 주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웃을 생각하며 사는 새 인생이 되었냐 하면 그것이 예수님께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25:40). 새 인생을 시작하면 새로운 사역을 전개한다. 새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4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