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평강을 베푸시는 주

오예1 2020. 7. 5.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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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주후202075(040704)맥추감사주일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이사야26:1-12

제목-평강을 베푸시는 주

2020년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류는 약 3천년 동안 농업사회를 이루어 왔다. 그리고 300년 동안 산업 사회를 이루었다. 농업 사회에서는 땅을 가진 사람, 군사력을 소유한 사람이 강했다. 산업 사회에서는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 강했다. 사실 땅과 자본은 거의 같다. 땅 역시 자본이기 때문이다. 농촌 사회에서는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평안해 보였다. 땅과 군사력을 함께 소유한 봉건 지주가 평안해 보였다. 그러나 땅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 치열하다. 땅을 지키기 위해, 혹은 땅을 더 차지하거나 남의 땅을 빼앗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이 있는 곳에 평안이 없다. 전쟁은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로 넘어와서 사람들은 자본이 많으면 평안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자본을 얻기까지 수없이 속을 끓여야 한다. 자본을 얻었어도 지켜야 한다. 자금의 흐름을 파악하느라고 분주하다 보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그러니까 돈이 많다고 하여 결코 평안한 것은 아니다. 땅이나 자본이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하나의 방법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평안 자체는 아니다. 지위나, 권력도 마찬가지이다. 가지고 있으면 평안한 것 같으나, 얻기까지 고생한 것을 따지자면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평안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세속적인 것들은 진정한 평안이 아니다. 진정한 평안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예화-톨스토이의 부활

1899년에 톨스토이가 발표한 작품입니다.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 1828~1910)가 법률가인 친구로부터 들은 실화를 배경으로 쓴 소설입니다.

귀족 청년 네풀류도프는 카추샤였습니다. 그는 나타샤라는 하녀를 유혹하여 임신까지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를 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하녀는 주인집으로부터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하녀는 그 후 이리 저리 방황하면서 지독한 고생을 하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눈물 나는 고생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견디다 못 하여 창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몸을 팔아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를 괴롭히는 남자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살인범이 되었습니다. 법정에 섰습니다.

그런데 임신하게 하였던 남자 네풀류도프는 그 동안 법을 공부하고 판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재판을 맡게 되었습니다.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자기가 한 때 불장난하여 그렇게 만든 여자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양심에 가책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돕게 되었습니다. 차마 사형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사형을 면하여 주는 대신에 시베리아 먼 땅으로 유형살이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여자를 시베리아로 유배시키며 그녀를 따라 가게 됩니다. 시베리아로 가는 길에 한 여인숙 방에서 밤중에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그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젊은 날의 방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 후부터는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일에 자신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며 나머지 생을 그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톨스토이의 <부활> 줄거리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인생이 됩니다. 마음에 평강이 깃 들게 됩니다.

-http://cafe.daum.net/yacop

1. 하나님이 구원을 베푸셨다.

유다는 좁은 땅을 가지고 있다. 땅이 적으니 양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유다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있다. 유다가 강한 나라들의 영토 확장에 압박을 당하고 있다. 유다의 땅은 전략적 요충지이다. 북방에서는 남진 정책을 쓰고, 남방 나라들은 북방정책을 쓰며 유다를 통과하려 한다. 유다는 남북 강대국들에 의해 샌드위치가 되어 있다. 당연히 유다에게는 평안이 없다. 유다가 평안을 얻으려면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든지, 혹은 화해를 하든지 해야 한다. 유다의 평안은 주변 나라들과의 정세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선지자는 이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구약의 역사서를 보면 유다의 평안은 주변 정세와의 관계가 아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유다의 평안이 결정된다. 겉으로 보기에 주변국과의 관계가 평안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깊이 들어가면 평안은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유다에 평안이 있다. 하나님이 유다를 구원해 주실 때 비로소 평안이 있다. 그 구원은 하나님이 유다를 주변국의 위협들로부터 보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심으로 유다에게 평안을 주신다. 하나님의 구원이 유다의 성곽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유다와 함께 하실 때에 그들에게 평안이 있다. 하나님이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 평안을 주셔야 그것이 올바른 평안이다.

2. 의지하는 사람에게 평안을 주신다.

유다 전체에 평안이 없어도 평안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일부 사람들에게 평안을 주셨다. 그들이 평안을 누리는 원리를 알면 백성 전체가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평안을 누리는 원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이 평안을 누린다. 하나님이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신다. 선지자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촉구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결과가 곧 백성들에게 평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평안의 기초이시다. 하나님은 세계를 창조하셨고,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나라를 다스리신다. 하나님은 경제적 문제도 다스리신다. 사람에게 평안을 주는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평안을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평안을 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평안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하여 모든 일이 다 형통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평안이 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믿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을 넣어 주신다. 믿음의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이 선물로 주어진다. 하나님이 평안의 주인, 평안의 근원이시기 때문이다.

예화-평안할 때 깨어 있으라

다음은 그리스도인들을 전멸시키라는 사단의 명령을 수행하고 돌아온 부하들이 사단에게 보고한 내용입니다. 첫 번째 부하가 보고했습니다.

두목님, 저는 산을 오르고 있는 그리스도인을 죽이려고 사자를 보냈지만 그 그리스도인이 사자 앞에서도 태연하게 기도를 하는 바람에 실패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부하가 보고했습니다.

저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전멸시키려고 거센 폭풍우를 일으켰는데, 그들이 암초 위에서도 찬송을 부르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하가 보고했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10년 동안 평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의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썩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평안할 때 자고하거나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어려울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늘 깨어 기도하며, 한결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3. 의인에게 평강이 있다.

의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의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의인의 기준이 여러 가지이다. 남을 돕는 사람,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 등등 사람마다 각각 의인의 기준을 세워 놓았다. 그러나 사람의 기준에 의한 의인은 사람의 노력으로 가능하다. 죄악 된 세상에서 의롭다고 해도 그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조금 나은 정도이다. 사람 세계에서는 아무리 의롭다고 해야 여전히 죄인일 뿐이다. 비교적 의인이 된 사람에게는 참 평안이 없다. 잠시 평안이 있어도 그 평안은 영원하지 않다. 참 평안, 영원한 평안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선물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에게 주어진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의인으로 인정하시는가?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 의인이다. 하나님의 권세를 바로 알고 있는 사람이 의인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은 영원한 권세를 가지고 계신다. 의인은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자신 앞에 선 사람을 의인이라고 인정하신다. 하나님은 자신을 사모하는 사람, 마음속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인정하신다. 이러한 의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배우기 원한다. 의인의 기준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선 사람이 의인이라고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평안을 선물로 주신다. 하나님의 마음이 의인을 향하여 있다. 하나님은 의인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

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평강을 베푸신다.

의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는다. 은총을 받고 감사하는 것을 보면 의인임이 분명하다. 악인은 은총을 받아도 감사할 줄 모른다. 은총을 받아도 의를 배우지 않는다. 정직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불의를 행한다. 하나님의 권위를 훼손하려 한다. 그들은 은혜를 받을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이러한 악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얻지 못한다. 악인은 자기들의 악을 회개하지 않는 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수 없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도 악인은 거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악인의 관심이란 도대체 자기 밖에 없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불의한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힌다. 불의한 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심판을 받는 사람에게 무슨 평안이 있는가? 그들은 심판을 받으면서도 부끄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의인은 안심해도 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만 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평안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의인이라고 인정도 해 주시고, 평안도 선물로 주신다. 하나님이 의와 평안을 시작하시고, 결과까지도 책임지신다.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애를 쓴다고 의인이 되지 않는다. 애를 쓴다고 평안을 얻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의인이라고 인정하시고, 의인에게 평안을 주신다. 그 모든 일이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진다. 우리가 곧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세상의 어떤 물질과 명예와 권력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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