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6월14(040613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누가복음 9:51-62
제목-주를 따르겠나이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준비할 사항들이 많다. 일을 계획하고, 함께 일할 사람을 모아야 한다. 함께 일할 사람에게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일에 대한 홍보를 해야 한다. 재정의 뒷받침을 준비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의 헌신과 열정이다. 될 테면 되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의 일은 결단코 성취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일을 성공하려면 무엇인가 희생이 따라야 한다. 땀 흘리는 노력이 없이 저절로 되는 일은 없다. 즉 희생이 없이 되는 일이 없다. 희생이 있는 곳에 지혜와 방법이 열린다. 세상의 일도 이렇거늘 하늘의 일 곧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어땠을까? 거기에 엄청난 희생이 따랐다. 구약 시대에는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의 희생이 있었으나 마지막에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있었다. 이 희생은 우리가 당할 희생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의 희생만으로 부족하여 죄 없으신 독생자를 희생시키셨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목숨을 포기하도록 시키셨다. 우리 편에서 보면 이것이 엄청난 은혜이다. 내가 당할 것을 예수님이 당하셨기 때문이다. 나의 사업을 누가 대신하고 거기에 대한 수익을 내게 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물론 내 대신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도 유익이 있겠지만 내게도 더 큰 유익이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을 이루어주셨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예화-참된 사명의 길
통카(Tonka)는 불도저나 트럭 장난감을 만들어 성공한 회사입니다.
그 회사의 사장은 로버트 토어니어(Robert Le Tourneau)입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만 다녔지만 신앙이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친구에게 신앙에 대한 도전을 받고 이제는 장난감 만드는 일을 그만 두고 하나님만 섬겨야 되겠다고 결심합니다.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무릎을 끓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헌신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짐을 체험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장난감 만드는 기계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기계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교회에 갔습니다.
목사님과 앞으로 무엇을 할까 의논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기도 후에 뜨거운 감격 속에 확신을 얻었는데, 장난감 회사를 계속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혀 주신 것입니다.
"그래, 지금부터는 나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을 하자" 라고 결단을 내린 토어니어는 장난감 기계를 다시 모아 회사를 계속합니다.
그는 통카 회사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순이익의 90%를 자선사업과 교육사업, 선교사업에 사용하였습니다.
'Jungle Crusher' 라는 정글 부수는 기계를 만들어 원주민 선교에 크게 이바지합니다.
토어니어는 '통카의 세계는 복의 세계' 라는 간증을 했습니다.
내가 사는 삶의 터전에서 주님을 위해 평생 헌신하며 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당신의 사명입니다.
그 일이 비록 소박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그 일을 통하여 내 영이 주님을 바라볼 수 있으며 주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근원이 되는 일이라면 그 일을 사명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yacop
1. 예수님은 자신의 때를 아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아셨다.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역할도 아셨다. 그 사명과 역할이 자신 외에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아셨다. 이 사명과 역할은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것이다. 비록 그 길이 희생의 길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기쁘게 그 길을 가셨다. 기쁘게 희생하는 것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으신 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과 역할을 이루실 때를 아셨다. 고난과 희생의 시기를 알고 계셨다. 예수님의 때가 온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때가 찼을 때 여자의 몸에서 나심으로 세상에 오셨다(갈 4:4). 그리고 예수님은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은 지금 고난과 승천의 때를 알고 계셨다. 자신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때를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희생의 기다리는 곳, 고난이 기다리는 곳으로 올라가신다. 예수님이 굳은 결심을 가지셨다. 희생과 고난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굳은 결심이 서야 한다. 비전을 이루려면 굳은 결심이 있어야 한다. 결심이 약하면 중간이 포기할 수 있다. 결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고난과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시려고 굳은 결심을 하셨다. 그리고 고난이 기다리는 곳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2.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였다.
예수님이 몇몇 사람들을 앞서 보내셨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라는 것이다. 앞서 간 사람들이 사마리아 지방으로 들어갔다. 당연히 사마리아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가실 바에야 오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경유지가 아니라 최종 목적지가 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경유지가 된다면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유익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추측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부스러기 은혜만 받아도 만족하다고 생각하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독차지하려고 생각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선한 의도가 숨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닌 것 같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사람들과 알력이 있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니 자기들 편이 아닌 줄 생각한다. 그래서 거절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거절하려 하면 명분은 얼마든지 많다. 불순종하는 것도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이유나 명분을 들이대지 않고 영접하는 것,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절을 보고 두 제자가 화를 내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불을 내려 멸하기를 제안한다. 예수님이 그들을 꾸짖으셨다. 거절하는 것을 판단하고 심판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 있다. 사람이 쉽게 열을 낼 일이 아니다.
예화-폴란드의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
1981년 타임지의 인물로 선정된 사람은
폴란드의 유명한 자유노조 지도자인 바웬사입니다.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아니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민중의 친구로서
<나는 여러분의 뜻이라면 언제든지 여러분의 희생양이 되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앞장서서 자유노조를 지지하다가 1981년에 투옥되었습니다.
폴란드의 막대한 군사력과 정치를 동원해도 바웬사를 어떻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비록 유물론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여전히 나의 뿌리는 하나님 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삶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었던 바웬사는
공산치하에서도 담대하게 자유노조를 지지하며 싸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적 자원을 가지고 살아갈 때
세상이 감당치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http://cafe.daum.net/yacop
3.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 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자 예수님이 다른 촌을 가셨다. 그러데 거기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로 가든지 저는 좇으리이다"(57절).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듯이 이 사람도 예수님을 따른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결심이 단단하였는데, 지금 이 사람도 예수님을 따르는 결심을 단단히 세웠다. 주님을 따르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세웠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그 결심은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가는 길을 함께 가겠다는 결심이다. 따르겠다는 사람은 영광의 길인 줄로 알 것이다. 예수님이 이에 대하여 대답하신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도다"(58절). 예수님이 가지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기초적인 생활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방랑객 신세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형의 재산을 가지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존감을 가지셨다. 그분은 자신이 진리라는 확신을 가지셨다.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사명을 가지셨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은 이 사명을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사명에 동의하는 사람, 이 사명에 함께 헌신하는 사람이다. 비록 가진 것이 없어도 예수님을 따라 함께 고난 받는 사람이다. 주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마 16:24).
4. 따르는 것을 뒤로 미루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결심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은 결심하셨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결심을 거부하였다. 앞의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후반부에 결심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 있다. 마음은 있는 데 막상 결심하자니 걸리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다. 예수님이 결심을 촉구하셨다. "나를 좇으라." 이 부름을 들은 사람이 결심이 늦춘다. 부모가 걸렸기 때문이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59절). 돌아가신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먼저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이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원하신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60절). 예수님의 생각인 즉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먼저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나 우리에게나 죽은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닌 산 사람을 위해 일하기 원하신다. 또 다른 사람은 주를 따르기는 따르되 먼저 가족과 작별인사를 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마땅한 일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결심보다 앞설 수 없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62절).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뒤로 미루지 않고 예수님을 따랐다. 배와 그물, 아버지까지 두고 예수님을 따랐다.(마 5:18~22). 희생과 고난을 각오한 결심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