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5월31일(040530)성령강림절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사도행전 19:1-7
제목-성령을 받았느냐?
신앙인이 다 똑같지 않다.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구원을 받았는데, 신앙의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그것은 성경을 이해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혹은 은사가 다르기 때문일 수 있다.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똑같아야만 한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들도 다르다. 하물며 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지만 어찌 다 똑같겠는가? 다르다는 것은 다양성을 의미 한다. 그리고 한 가지만 고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는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조화를 이루며 교회의 능력이 증가된다. 조화는 팀워크를 이룬다.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것도 여럿이 감당한다. 팀워크를 이루며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소위 말하는 시너지 효과가 생긴다. 그 조화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감동시켜서 다양한 것들에 대한 이해를 넓히신다. 예수님께서 조화를 이루도록 성도들에게 겸손과 이해력을 주신다. 예수님께서 조화와 팀워크를 통해 성장하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도우신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심으로 성도들을 도우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예수님의 영이다. 성령은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신다. 그리고 성도들을 능력있게 하신다.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더 확실히 알아진다. 예수님을 닮고, 예수님의 뜻을 이어간다. 예수님이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일하게 하신다.
예화-26명의 호위병으로 선교사를 보호해 주신 하나님
한 선교사가 1997년 미시간 주 어느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면서 그는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약품을 전달하여 주곤 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정글을 통과하여야 했습니다. 어느 날 쟝글을 가는 데 군인 두 명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한 군인이 심하게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는 그 군인을 치료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전하고 돌아 왔습니다. 며칠 후 그 군인이 선교사를 찾아 와서 말했습니다.<선교사님! 사실은 우리 두 군인은 당신들이 약품과 돈을 가진 것을 알았기에 정글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당신을 죽이고 약품과 돈을 빼앗으려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을 호위병 26명이 경호하고 있어서 덤비지 못 하였지요.> 선교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나는 경호원이 없는 데요.><아니요. 우리만 본 것이 아니라 우리 일행 5명이 다같이 보았습니다. 같이 세어 보았더니 분명히 26명이었습니다.>그 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물었습니다.<선교사님! 그 때가 어느 때쯤 되나요?>선교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날자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그 날 그 때 나는 골프를 치러 가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그 때 성령님이 나를 기도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을 위하여 기도하라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골프를 그만 두고 교회로 가서 몇 명 성도들과 함께 기도하였지요.>선교사님이 놀라서 물었습니다.<그 때 같이 기도하였던 분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보세요.>세어 보니 모두 26명이었습니다.-http://cafe.daum.net/yacop
1. 성령을 받으라는 권면이 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외친다. "너희가 믿을 때에 주의 성령을 받았느냐?" 그런데 에베소 사람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우리는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였노라." 바울과 에베소 사람들의 믿음이 다르다. 바울은 영적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깊은 영적 체험을 가진 사도이다. 그리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이다. 반대로 에베소 사람들은 복음을 전달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아직 신앙의 초보이다. 그들은 아직 성령을 소개받지 못하였다. 영적으로 어린아이다. 하지만 다르다는 것이 부각되면 문제가 드러난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무시하게 될 것이다. 에베소 교인들은 바울의 복음을 파격적인 것이라고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바울이 교인들에게 성령을 소개한다. 그리고 교인들도 바울의 소개를 받아 성령받기를 사모한다. 바울과 에베소 교인들 사이에 조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이 자랐다. 문제는 이 땅의 교회들 사이에 신앙의 문제를 가지고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특히 성령의 문제가 그랬었다. 성령운동을 고정화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에서는 성령을 수용하지만 성령운동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양쪽 모두 성령을 제한시키고 있다. 성령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닌 반목의 도구로 사용되었다. 개탄스러운 일이다.
2.우선 예수를 믿어야 한다.
에베소 교인들이 아직 성령을 모른다는 대답을 하였다. 바울이 어떻게 대처했을까? 바울이 그들의 믿음을 진단하였다 그들의 영적 믿음이 어느 수준에 왔는지 질문한다. 바울이 교인들에게 묻는다.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교인들의 대답이다. "요한의 세례로라." 에베소 교인들은 세례 요한까지만 알고 있다. 세례 요한 이후에 되어 진 일은 잘 모른다. 문제는 그들이 세례 요한조차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알고 그 사역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세례 요한이 전한 메시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 정확한 영적 진단이 내려졌다. 진단이 내려졌으니 치료할 수 있다. 믿음의 수준을 알고 있으니 교인들의 믿음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바울이 영적 대안을 제시한다. 성령 받을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들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에베소 사람들은 우선 예수님을 알아야 한다. 요한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였었다. 그러니까 요한을 알고 있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은 이후에 성령이 오신다. 예수님을 모른다면 성령도 모를 것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곧 예수님의 영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는 반드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사모한다면 우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화-어느 청년의 헌금
어느 시골교회 목사님이 교회를 지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끝냈는데 마루를 놓을 돈이 없었습니다.
교회 성도들과 의논했으나 별도리가 없었습니다.
수요일 삼일기도회 설교 준비를 하는데 그의 마음에 성령께서 "오늘 헌금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설교시간이 되었어도 목사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설교 도중에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회개하는 마음으로 헌금시간을 갖겠다고 하였습니다.
혀는 곧 풀렸고 헌금시간을 가졌습니다.
예배 후 헌금을 계산하려고 헌금 통을 보니 그곳에는 헌금봉투가 하나 있었습니다.
마루를 놓을 돈이 25만원이었는데 수표 한 장에 27만 5천원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수표는 목사님이 아들에게 등록금으로 준 수표였던 것입니다.
그날 목사님의 아들이 수요예배를 드리러 갈 때 등록금을 헌금시간에 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아들은 그 해에 대학을 들어갈 수 없었으나 다음 해에는 한국의 최고대학에 개교 이래 최고의 수석을 하였고, 지금은 미국에서 물리학 박사가 되었습니다.-온맘닷컴
3. 예수님 이름으로 성령이 오신다.
에베소 교인들의 마음이 열렸다. 그들은 가진 지식에 만족하지 많았다. 이미 가진 믿음을 고집하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예수님 앞에 그들의 마음이 열렸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신앙의 성장이 있다. 열린 분위기를 가진 교회가 성장한다. 열렸다는 것은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도 열린 의식이 필요하다. 어떤 이들은 열렸다는 것을 새로운 사조를 신속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문화적인 다양성을 수용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사람도 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열려 있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준비된 믿음의 자세이다. 예수님이 주시는 대로 은혜를 받겠노라고 준비된 마음이다. 예수님의 약속을 믿고 성령을 사모하는 사람이 곧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예수님이 이미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믿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할 것이다. 믿는 사람은 성령의 나타남을 체험하고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성령이 임할 것이다.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보다 앞서 가지도 않는다. 성령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열린 사람에게 오셔서 그를 예수님의 뜻대로 사용한다.
4. 성령의 은사가 임한다.
바울이 교인들에게 안수하며 기도한다. 교인들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 성령이 교인들에게 오셨다. 성도들에게 영적 경험을 하게 하셨다. 성도들에게 은사를 주셨다.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한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냉랭하던 에베소 교인들의 신앙에 불이 붙었다. 그들의 신앙이 한 단계가 아닌 여러 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 예수님을 소개받고, 세례를 받았다. 안수를 받고 은사를 받았다. 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성령을 소개 받으니 급작스럽게 신앙의 성장을 경험하였다. 성령을 받고자 마음을 열어 놓으니 신앙의 성장이 이루어졌다. 한 사람도 아닌 열두 사람 정도가 한꺼번에 신앙성장을 경험하였다. 성령께서 에베소 지역에 열두 제자를 불러 바울에게 붙여 놓으셨다. 한 사람의 영적 경험도 세계를 흔들고, 역사를 새로 쓸 수 있는데 무려 열두 사람이니 이거야말로 엄청난 일이다. 에베소 지역이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가 건강하고 든든하게 성장할 것이다. 앞으로 바울의 선교를 돕는 교회가 될 것이다. 이후 바울이 삼년 동안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사역하였다. 성령의 역사로 에베소 교회가 훌륭한 교회로 성장하였다. 성령의 역사로 건강한 교회가 되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바울과 에베소 장로들의 작별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에베소 교회의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