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6월28일(040627)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레위기 3:1-4
제목-순종의 믿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 그렇다면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다. 즉 사람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들어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사람 속에서 하나님의 모습을 찾을 수 있겠는가? 쉽지 않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허물 수 없는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강이 존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아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먼저 장벽을 허무셨다. 하나님이 먼저 강을 건너는 다리를 만드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찾아 오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남으로 하나님을 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알고 그 성품에 참여한다. 하나님은 모세 시대 때에도 자신의 거룩함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거룩함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순종함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순종하는 백성들이 곧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함을 가진다. 사람의 힘만 가지고는 순종이 쉽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순종하는 힘을 주신다. 그 힘은 순종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아버지를 사랑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따라 예수님도 거룩하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며 거룩함의 기쁨을 누린다.
예화-말씀에 순종하라
매사에 삐딱한 한 청년이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쪽도 돌려대며(마5:39)’ 라는 말씀을 읽고, 과연 그런가 알아보기 위해 집근처의 교회를 찾아갔다.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고 있는 인상 좋게 생긴 한 장로님에게 다가가 아무 이유도 없이 뺨을 갈겼다.
그랬더니 성경말씀과는 다르게 그 장로님은 노발대발했다.
그래서 청년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마태복음 5:39을 장로님께 펼쳐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그 장로님은 청년의 머리를 때리며 말했다.
“내가 화 안 나게 생겼냐? 오른편 뺨을 쳐야지, 넌 왼뺨을 쳤쟎아. 성경 좀 제대로 읽어라.”
1.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순종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하셨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사랑의 공식을 알려 주셨다. 우리 마음대로 사랑하는 것이 좋은 것 같으나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다. 우리의 오해와 편견무지에 의해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입장을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수준이다. 사랑은 내 입장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의 방법이 무엇인가? 우상을 만들거나 그 앞에 절하지 말라 하신다. 하나님께는 당연한 영광이 돌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믿음과 경배의 유일한 대상이시다. 우상을 만들거나 거기에 절하는 것은 경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화목제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께 열납 되도록 드리라고 하신다. 화목제 예물을 사람의 것으로 취하지 말라고 하신다. 만약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취하거나 그 예물을 먹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다. 죄에 대한 대가도 받을 것이다.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하나님의 것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취하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것을 자기 욕망으로 쓰려고 해도 안 된다. 하나님의 것을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해야만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예화-거절치 못할 초대
(순종하는 것을 싫어하는 자는 지도자가 될 수 없다. -플로리오)
한 중년 신사가 에밀리 포스트에게 이렇게 물어왔다. "제가 백악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다른 약속이 있어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에밀리 포스트는 단정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무슨 그런 일로 고민하십니까. 그야 물론 백악관의 초대에 응해야지요. 백악관의 초대는 일종의 명령이며, 뒤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다른 약속이 취소되어야겠지요."
이 대답을 들은 중년 신사는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가 약속된 날 백악관의 만찬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렸다.
하나님의 부르심도 이와 똑같다. 그분의 부르심은 명령이며, 그 어떤 인간의 계획도 그 부르심을 거역할 수는 없다.-온맘닷컴
2. 우리는 부모를 공경함으로 순종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신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은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나오는 계명이다. 이 계명은 하나님이 사람 사이에 행할 계명 중에서 첫 번째로 주신 계명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에게 할 일 중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자기의 근원을 부정하는 일이다. 부모님 공경을 외면한다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부모님 공경을 배제하고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조차도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부모님이 자신에게 해 준 것이 없으니 자신도 공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 해 준 것이 없는가? 자기를 이 땅에 낳게 해 주시지 않았는가? 어떤 사람은 부모님으로부터 나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공경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다. 내가 가진 생명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아닌가? 이런 사람은 부모님과 자녀 사이를 마치 계약 관계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그렇다며 자기 자녀를 가르치는 것도 이 다음에 자기를 잘 모시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부모님은 자녀에게 기대려 하지 않는다. 지금 일방적으로 줄 뿐이다. 우리 부모님도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셨다. 그분들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주는 사람을 몸으로 실천하셨다. 받은 사랑을 돌려줌이 당연하지 않은가?
예화-할머니의 지팡이
오솔길을 걷던 꼬부랑 할머니가 두 갈래 길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의 길을 인도해 주세요.
저의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지면 오른 쪽 길로 왼쪽으로 쓰러지면 왼쪽 길로 걸어갈께요....."
그리고 할머니는 자신의 지팡이를 길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러자 할머니의 지팡이가 오른쪽으로 쓰러졌습니다.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지기를 원했던 할머니는 "하나님 한번 만 더 해볼께요."하며 지팡이를 다시 세워보았으나 지팡이는 또다시 오른쪽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오기가 발동한 할머니는 지팡이를 계속해서 세웠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지팡이가 왼쪽으로 쓰러졌습니다.
할머니는 "역시 하나님은 나를 왼쪽 길로 인도하시는 구나..."하면서 유유히 왼쪽 길로 걸어갔답니다.
오늘날 주님의 음성을 들 을 수 있는 영성을 지닌자가 몇이나 있으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려는자 몇이나 있을까요?
주님의 뜻은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멋대로 모든 계획을 세워 놓고 실천하면서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http://cafe.daum.net/yacop
3. 우리는 인자함을 베풂으로 순종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자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인자함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함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생명을 주시는 은혜이다. 그리고 그 생명이 거룩한 생명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점점 우리에게 더 깊어졌다. 하나님의 인자함의 대상이 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 인자하심을 본받아 다른 사람에게도 인자함을 베푸는 것이다. 인자함을 베푸는 것 중에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인가? 먹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추수할 때에 다 거두지 말라고 하신다. 일부러 땅에 떨어뜨려 주라고 하신다. 이삭을 떨어뜨리고, 포도를 떨어뜨려 주라고 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것을 거둘 수 있도록 하신다. 즉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풍성한 사람이 부족한 사람을 배려하라고 하신다. 보아스가 이처럼 배려하였다. 그는 일꾼들을 시켜 이삭을 더 많이 떨어뜨리게 하였다. 떨어진 이삭을 룻이 거두었다. 보아스의 이 같은 인자함이 메시야 가문을 이을 만하였다. 인자함을 베푸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이다.
4. 우리는 이웃을 사랑함으로 순종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거룩함의 방법을 계속 제시하신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이다. 십계명 중에 이웃을 향한 계명 모두가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 방법들이다. 부정적인 것들 즉 도둑질, 속임, 거짓말, 거짓 맹세 등은 사랑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일이요, 동시에 하나님도 사랑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웃을 압제하고, 일군들에게 품삯을 주지 않는다. 혹은 다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린다. 이 땅에 불의로 재판하는 재판장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보다는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이웃들을 죽을 지경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 험담하며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한번 상처를 입으면 그 상처를 반드시 갚아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세 시대에나 지금이나 이런 모양들이 여전하다. 사랑이 없는 세상이다. 하나님이 이웃을 향하여 사랑하라고 하신다. 그 사랑의 방법은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은 존재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들 모두 아픈 감정, 기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남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 될 수 있다. 남의 기쁨은 나의 기쁨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웃을 사랑하면 그 사랑이 내게 돌아온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돌아오게 하신다. 순종함으로 거룩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