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음 증거하는 일

오예1 2020. 7. 1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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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일-주후2020719(040718)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사도행전 20:24

제목-복음 증거하는 일

 

인생의 극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다. 그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다. 전도를 잘하기로 유명한 집사님도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 있었다. 그는 주일 아침에 놀러가다가 차가 뒤집혀 죽을 지경에 이르렀었다. 이 사고로 인해 그는 주일을 어기면 안 된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몸이 회복된 뒤 그는 전도에 헌신하였다. 청년들과 함께 전도를 하는데 그의 교회가 속한 지역을 샅샅이 뒤졌다. 전도의 효과가 나타나고, 교회의 부흥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그의 전도 경험과 간증이 책으로 나오고 그는 한국교회에서 전도로 유명한 강사가 되었다. 사도 바울도 극적인 경험을 하였다. 그는 신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나 가는 도중에 예수님을 만났다. 하늘에서 강렬한 빛이 보이고, 바울의 눈이 멀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린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이 대답한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니라"(9:5). 바울은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으로 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선지자 아나니아를 만나 기도로 눈을 뜬다. 이후 바울은 복음의 전도자가 되었다. 바울이 갑자기 변하였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간증을 두 번이나 한다(22, 26). 바울은 스스로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자신을 핍박자, 포행자. 훼방자로 표현하였다(딤전1:14).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보니 자기처럼 악한 사람도 구원하신 은혜가 너무 놀라웠다. 자기처럼 악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신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다. 이것이 바울에게 있어서 은혜의 복음이었다. 혹시 우리 중에는 앞서 말한 전도왕 집사님이나 바울처럼 극적인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그 경험이후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과연 우리는 은혜의 복음을 분명히 경험하였는가?

예화-전도 하는 사람

목사님이 강단에서 신자 배가 운동을 강조하며 열심히 전도하라고 강론하자, 어떤 교인이 목사님께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우린 말주변이 없어서 전도를 할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목사님이 전문가이시니까 전도는 목사님이 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여러분! 어미 양이 새끼를 낳아 번식시키지, 목자가 새끼 양을 낳는 것 보셨습니까?”

1. 사도는 주 예수께 사명을 받았다.

바울은 회심 중에 예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9:6). 바울은 예루살렘 법정에서 유대인들에게 이 말을 그대로 사용한다(22:10).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 왕 앞에서는 더 구체적인 사명을 말한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26:16-18). 은혜를 받았다 함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기쁜 느낌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은 환각제를 복용할 때나 나타나는 일이다. 은혜를 받았다 함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깨닫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은혜를 받았고, 사명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 사명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3차에 걸친 전도 여행을 하였다. 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편만(고르게 널리 차서 그득하다)이 전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서바나로 가고자 하였다.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에 철저하였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권리였다. 억지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감격 때문에 감당하는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 앞에서 자신의 선교 사역이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한다. 그래야 장로들과 헤어지는 슬픔을 이길 수 있다. 장로들도 바울을 이해하고 기도로 후원할 수 있다. 장로들 역시 바울과 같은 사명자를 키우고 세우는 데 참여할 것이다.

예화-말주변 없는 자의 전도

영 랄프 발턴은 유난히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되도록이면 대중 앞에서 말하기를 꺼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주님을 증거 할 아주 좋은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는 복음전도책자를 써서 인쇄한 후 여러 곳에 보냈다. 그 중 한권이 서아프리카 지방에 살고 잇던 한 가난한 작은 토인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토인은 영어를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 책을 읽고 자신이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며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죽으셨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그 토인은 발턴에게 편지를 띄웠다.

"나는 이제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당신의 글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회개하였습니다.

지금부터 나는 그 책이 내게 알려 준 진리를 마을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발턴은 이 편지를 읽고 주님을 증거 할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이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C. D. 카터)

2.사도는 은혜의 복음을 증거한다.

사도의 사명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도가 먼저 은혜를 받았다. 그가 받은 은혜는 죄를 묻지 않는 은혜이다. 바울의 죄를 따지고 들자면 한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예수님께 고소할 것이다. 목숨을 빼앗아 간 사람, 피 보기를 즐겨하는 사람이라고 고소를 당할 말도 하다. 실제로 바울은 스데반의 순교현장에 있었다.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바울은 스데반에게 앞장서서 돌을 던졌을 것이다. 바울이 군중들을 선동하여 스데반을 죽이도록 하였을 것이다. 스데반이 죽자 시신을 사울 앞에 둔 이유였을 것이다. 남의 목숨을 빼앗았다면 자기 목숨으로 보장하여도 시원찮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바울의 죄를 묻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에게 할 일이 있다고 하시며 그를 불러 주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울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이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엄청난 은혜였다. 게다가 죽음으로도 자기 죄를 다 갚을 수 없을 터인데, 살려 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말하자면 예수님이 바울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이다. 새로운 인생을 살 기회를 허락하신 것이다. 이것이 바울에게는 복음이었다. 바울에게서는 복음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일, 그것도 예수님을 위한 새롭게 일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은혜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은혜의 복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았다. 은혜의 복음이 자기에게 먼저 적용된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기가 받은 은혜의 관점으로 사람을 보았다. 자기와 같은 죄인도 살았으니 어떤 죄인이라도 살 기회가 있다. 자기와 같은 무뢰한도 복음을 알았으니 누구든지 복음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은혜의 복음이 전파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예화-말더듬이의 전도

미국의 한 기독교 문서전도협회는 문서전도를 위해 각지에서 모여든 지원자들 중에 말을 몹시 더듬는 말더듬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이 말더듬이가 있음을 발견하고는 놀라서 본부에 이 사실을 전했을 때 교육을 담당하는 한 간부가 정중히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사람을 감동시켜 이곳에 보내셨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 어떻게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시는지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말더듬는 사람이 담당한 지역에서 많은 서적이 필요하니 책들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계속되었습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그처럼 많은 책을 팔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본부에서는 전도자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강요하며 책을 떠맡기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결국 본부에서는 지도원을 파송해서 그 전도자와 함께 문서전도에 나섰습니다. 그 문서 전도자는 시골길을 걸어서 한 집 한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집에 들어가기 전에 나무 밑이나 길가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성령께서 먼저 저 집을 방문하여 그 사람을 감동시켜 주시옵소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만 믿고 갑니다. 아멘!”이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방문하는 집마다 말더듬이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듣고 기독교 문서를 사기로 약속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3.사도는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

바울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라면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바울이 자기의 각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실제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며 수 없는 위험을 겪었다. 죽을 고비도 여러 차례 넘겼다. 그가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며 자신의 고통 받았던 일들을 잠시 언급한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왜 바울이 이토록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복음을 전했을까? 그것은 자신이 먼저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 몸을 아끼면 생명의 은혜를 전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위험을 당해도 생명의 복음이 전달되는 것이 우선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도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선지자 아가보가 바울의 띠를 가지고 향하여 예언한다.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21:11). 그러나 바울은 담대히 대답한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21:13). 바울이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결과가 나타났다. 그것이 곧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은혜를 받고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가 바로 바울과 같은 사역의 혜택을 받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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