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023년 6월 7일 수요일
네 골방에 들어가 [마]6:6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부자연스러운 충고를 해왔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사람들은 시골, 해변, 산으로 들어가 생각에 잠기기를 즐긴다...그러나 이는 저속한 사람들이나 할 법한 일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원한다면, 인간은 언제든지 자신을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보다 더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곳은 없다." 물론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내적 고요함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한다. 오히려 사막이나 산으로 물러나 기도한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어려우면, 조용한 골방으로 들어 가는 것이 어떨까?
오늘날 과학 기술 시대가 만들어내는 각종 소음은 영성을 해치려는 거대한 음모이다. 다른 무엇보다, 라디오와 텔레비젼은 잠시도 고요하게 있지 못하게 방해한다. 연인과 친구도 말없이 함께 앉아 있거나 걷는 법을 이미 잊어버렸다. 내가 보기에는 입으로 하거나 글로 기록된 말 가운데 80%이상은 쓸모없다.
하나님은 히브리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그런데 히브리어에는 '말'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을 받았으나 그 사실을 히브리어로 말할 수 없었다. '말'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들은 '다발'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것은 '실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도 쓸모없는 이야기가 아닌 실체에 관해서만 이야기 하고 귀를 기울이자.
히브리어로 요한복음 서론은 이렇게 시작된다. '태초에 실체(다발)가 계셨다. 그 실체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실체는 하나님이셨다."
중요하지도 않은 얘기를 주고 받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각자 골방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조용히 교제하는데 시간을 더 쏟자.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