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8월16일(040815)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시편 85:1-13
제목-포로된 자로 돌아오게
어린 시절 더운 여름 날 풀밭에 누워 밤하늘을 쳐다 본 적이 있었다. 뜨거운 햇볕이 지고, 시원한 바람을 쐬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밤하늘의 별을 세는 재미는 그야말로 운치가 있고,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하다.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과 인터넷 그리고 판타지 소설에 신경을 쓰느라고 이런 운치는 잘 모를 것이다. 사람들은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며, 그 속에 무진장의 지식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가진 지식들은 몽땅 인터넷에 올려놓으니 그런 말을 한 만도 하다. 하지만 인터넷도 하나님의 신비를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신비를 완전히 깨닫고 그것을 누가 듣는 지 단번에 이해하도록 글로 적는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만든 인터넷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마당에 하나님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런데 인터넷은 몰라도 하나님은 아는 사람이 있다. 인터넷은 가까이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는 가까이 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차원보다 하나님의 차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인터넷 중독보다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을 더 아름답게 보신다. 인터넷 중독은 인격을 파괴한다. 건강을 해친다. 그러나 믿음은 인성을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평안과 건강을 얻는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조금 몰라도 믿음만큼은 가져야 하지 않는가?
예화-허무의 벽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 한국의 사회는 미신이 지배하는 주술사회였다. 국민 대다수가 글을 몰랐고, 운명을 믿으며 그 생활 속에서 헤어 나올 생각조차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지배한 샤머니즘의 주요관심은 인간의 윤리가 아니라 영계가 조작하는 재액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이었다. 잘못된 사상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위해 선교회에서 실시한 것은 성경교육과 성서적 신앙과 윤리관 고취였다.
근대식 교육으로 말미암아 여성들의 완고한 미신사상을 극복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선교회는 한국 여성들의 미신타파를 위해서 강력한 복음의 무기를 사용했고, 현대식 방법으로 과학을 교육함으로써 미신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교육은 인간을 둘러싼 허무의 벽을 무너뜨리고 그 속에 있는 자아의 눈을 뜨게 하며, 인간의 자아가 참된 가치관을 찾아 참 인간으로 돌아오게 하는 내적 운동을 일으켰다. 물론 제대로 신학교육을 받지 못한 한국인 지도자들이 샤머니즘을 배경으로 교육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무의 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감당했다.
1. 하나님이 민족을 회복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래도 표현할 수 있는 만큼 표현해야 한다. 은혜를 받고, 마음속에 감동이 있는데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모르면 말로 할 수 있고. 말로도 잘 안되면 손짓 발짓이라도 할 수 있다. 혹은 노래로 부를 수 있다. 노래를 잘못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사람이 가진 재능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할 수 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은혜를 주셨기에 이처럼 할 수 있는 한 표현해야 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민족을 회복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였다(430년간).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출2:23).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끌어내셨다. 이스라엘이 끌려 나왔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혜택을 입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종의 시대에서 자유의 시대로 나아갔다. 본래 가졌던 자유를 회복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 생활을 하였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사람을 찾으셨다. 웬일인지 부르짖는 사람이 없다(호7:7). 나중에 느헤미야가 부르짖는다(느1:4). 하나님이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백성들을 이끌어내셨다.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이 백성들을 회복시키셨다. 우리들도 일본의 압제에서 부르짖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해방과 회복을 주셨다(8.15광복절). 어찌 은혜라 아니할까?
예화-포기는 없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처칠은 전쟁 중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는 땅에서는 물론 바다와 하늘에서 한 치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국토를 수호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믿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할 것이다. 우리는 믿는다.
힘과 능력을 가진 새로운 세상이 옛것의 회복과 해방을 향하여 우리 앞에 올 것이다”
2.하나님이 분노를 그치시고 구원을 베푸셨다.
이스라엘의 고통은 사실상 죄에 대한 대가였다. 하나님이 용서하시려고 아무리 마음을 먹으셔도 이스라엘 중에서 용서받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는 하나님이 한 사람만 공의를 행하여도 구원하시겠다는데, 한사람조차도 공의를 행하지 않는다(렘5:1). 국가와 민족이 썩었고, 선지자와 제사장, 왕과 관리들 그리고 백성들이 모두 부패하였다는 말이다. 양심에 화인을 맞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듣고, 고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나마 책망과 고통을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책망과 고통은 돌아올 기회, 회개의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망과 징계도 없다면 완전히 버림받은 것이며. 사생자나 같을 것이다(히12:5). 책망과 징계 중에 깨닫는다면 은혜를 받을만한 준비가 된다. 하나님이 이것을 보시고 백성들을 향한 분노를 그치신다. 하나님이 주셨던 징계를 거두신다. 그리고 이전 상태로 회복시키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이다. 외국의 내정 간섭에 무방비로 당했었다. 심지어는 국권마저 빼앗겼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르짖었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였는가?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하나님이 주신 구원이라고 믿지는 않는가?
예화-회개
일본에 ‘다카바다’라는 유명한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에 들어와서 진실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는 “일본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유물사관 밖에는 읽으라고 장려할 만한 책이 없다”라고 하며, ‘자본론’을 번역하여 출판했고, “종교는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는 결핵에 걸렸고 끝내 회복되지 못했습니다.
죽을 때가 가까워오자 그는 성경과 찬송을 찾아서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고 눈물을 흘리며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떠날 시간이 임박해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환해졌습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물었습니다.
“자네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하나님께로 가네. 모든 과거의 불신앙을 청산하고 하나님께 부끄러움 없이 간다네”
이렇게 말하고는 고요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3. 하나님이 말씀으로 구원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민족을 사랑하신다. 이스라엘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온 나라. 온 민족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온 나라, 온 민족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보내셨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온 나라, 온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여기 세상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람들이 모인 곳, 나라와 민족을 이루며 사는 온 나라 백성들이다. 예수님은 승천에 앞서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명령을 행하셨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막28:19). 모든 족속이 누구를 말하는가? 이스라엘을 포함한 온 인류를 말한다. 온 인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20). 여기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향하여 사랑의 말씀을 주셨다. 독생자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셨다. 독생자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진리의 영이신 보혜사를 보내셨다. 이제 우리는 말씀을 나누어야 할 사명이 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딤전2:4)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셨다. 화평의 말씀이며,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다. 개인과 국가 민족이 말씀을 들으면 구원을 받는다.
4. 구원받은 우리는 영광의 백성이다.
자유를 가진 민족은 행복한 민족들이다. 지금도 자유가 없는 민족들이 많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자유가 좋아서 교육도, 의무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산다. 쿠르드 족들은 몇 천만 명이나 되지만 나라가 없어서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린다. 그들에게 자유와 나라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국제정세가 그들에게 자유를 주지 않는다. 이 밖에도 세계 도처에서 자유를 얻기 원하는 민족들이 많다. 우리와 피를 나눈 형제들도 자유 없이 살고 있다. 북녘의 우리 형제들이다. 과거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 자유를 얻기 위해 싸웠다. 우리가 가진 자유는 우리의 선배들의 피와 땀 덕분이다. 자유는 곧 구원이다. 자유를 가진 백성들이 영광을 얻는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영광이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얻는 자유도 영광이었다. 자유가 있는 곳에 영광과 온갖 좋은 것을 다 누린다. 지금도 육신의 자유를 제한받는 사람들이 있다. 또 영적 자유를 제한받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인들도 있다(롬3:23). 죄인들이야말로 자유를 제한받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진리가 필요하다. 진리가 그들을 자유하게 할 것이다(요8:32). 자유와 구원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물이다. 이것이 곧 영광이다. 자유를 가진 사람,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누린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후2020년9월6일 주일낮 영상예배 (0) | 2020.09.05 |
|---|---|
| 2020년8월30일 주일낮영상예배/창조 질서를 거역하지 말라 (0) | 2020.08.29 |
| 달음질 (0) | 2020.08.09 |
| 여리고 성 (0) | 2020.08.02 |
| 주님께 합당한 자 (0) | 2020.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