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가까운 사람, 먼 사람

오예1 2020. 3. 15.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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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6-z_LsbpU5U

설교일-주후2020315(040314)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고린도후서 6:11-18

제목-가까운 사람, 먼 사람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거룩하게 된 사람이다.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체험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않고 내면으로 사귈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성도들이 모여 교제하는 곳, 믿음을 배우고, 은혜를 나누는 곳이 곧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는 다툼이 있다. 교회가 사람들에 빛이 되고 기쁨이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걱정거리가 된다. 몇몇 사람들이 과연 이 땅에 교회가 필요할까 하는 의심을 품는다. 심지어 교회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이다. 고린도 교회가 그랬었다. 당을 지어 갈등과 반목이 있었다. 패싸움을 하는 것이다. 은사운동이 일어났으나 교만하여 자기 은사가 최고라도 말하는 적도 있었다. 율법주의와 세속주의가 고린도 교회 안으로 들어왔었다. 이단과 거짓 은사들 밖에 없고, 도저히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성도들이 꼬여 있다. 교회는 내부적으로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멍 들었고 곪아 있었다. 바울이 수없이 그들을 타일렀다. 눈물로 호소하고, 책망한 적도 있었다. 갈등을 봉합시키고, 분쟁을 조정한 적도 있었다. 쉽지 않은 노릇이다.

 

1. 성도는 마음과 마음으로 교류한다.

갈등과 분쟁 그리고 싸움의 원인이 단 한 가지이다. 좁은 마음씨 때문이다. 한 사람이 좁은 마음씨를 가지면 선한 말도 왜곡해서 듣는다. 오해하여 듣고 오해를 밖으로 쏟아낸다. 단순히 오해하였노라고 말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독설도 품어낸다. 한 사람이 이렇게 하면 연쇄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독설을 들은 사람이 맞받아치고, 독화살과 같은 거친 말을 상대방에게 쏘아댄다.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중간에 화해시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싸우던 사람이 화해시키는 사람을 향해 공격을 가한다. 일대일의 싸움이 이대 일의 싸움으로 확대된다. 조금 후에는 싸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왜 그럴까?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이 좁다고 탓하지만 사실은 자기 마음이 좁기 때문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넓은 마음씨로 화해와 평안을 권면하였다. 자녀에게 말하듯 부드럽게 권면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오해한다. 바울을 공격한다. 싸움을 그치려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새로운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바울은 교인들 스스로 마음이 좁아졌음을 일러준다. 바울의 부드러운 권면에 보답하는 양으로 마음을 넓히라고 권면한다. 그렇다. 성도는 마음이 넓어야 한다. 넓은 마음으로 영적 교류를 가져야 한다. 용서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이 넓은 마음으로 우리를 용납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넓은 마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마음이다.

예화-후탁성도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찬송 한곡도 안 부르다가 주일이 되면 먼지가 쌓인 성경 찬송을

불고, “쳐서 먼지만 털고 나오는 성도를 가르키는 말

 

2. 믿지 않는 자를 거절하라.

성도들 사이에는 넓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용서함이 있어야 한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4:32). 일단 용서하면 함께 할 수 있다. 눈물로 서로 용서를 구하면 악한 감정이 사라진다. 관계가 회복되고 기쁨으로 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 용서했다고 하여 언제나 함께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이단들이다(신천지 등). 그들은 용서하고 안하고의 문제에서 벗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을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과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것이다. 용서와 화해도 믿음이 같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지는 것이다. 믿음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용서란 개념 자체도 성립되지 않는다. 성립되지 않는 것을 한다고 나선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이 아닐까? 하나님은 이단자들(신천지 등)과 함께 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으신다. 이단자(신천지 등)는 불신자들이다. 잘못 믿고 있으니 믿지 않는 자나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 임이니라"(요이 1:10~11). 성도는 이단자(신천지 등)와 멀어야 한다. 진리와 오류가 분별되어야 한다. 성도는 함께 할 것은 함께 하되 끊을 것은 끊어야 한다.

예화-신장을 기증할 교인

2000명쯤 모이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목회를 하다 신장이 상해 기능을 전혀 못하게 되어 신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목사님이 그 사실을 통보받고 너무나 당황했다. 목사님이 하루는 용기를 내서 설교 중에 이 사실을 밝히면서 성도들에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과 동역을 하다 신장이 못 쓰게 되었습니다. 신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합니다. 날 여러분들이 동역자로 생각해 준다면 누가 내게 신장 하나 기증해 줄 분이 있습니까? 혹 내게 신장을 하나 기증해 주실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보세요." 순간 긴장, 침묵이 잠시 흐르고 여기저기서 한 사람, 두 사람 손을 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예배에 참여했던 2000명이 다 손을 들었다. 이 목사님이 너무 감격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 이 중에 내가 어느 분 한 분을 택하면 나머지 분들이 상심할 수 있을테니 한 주간 기도하고 한 분을 택하겠습니다." 드디어 한 주간이 흘러 주일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지난주에 나왔던 분들이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다 나왔다. 이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한 사람을 선택할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내가 한 주간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직접 선택하는 것 보다는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오리털 하나를 꺼내 보이며 "내가 이제 이것을 불겠습니다. 이 오리털이 떨어지는 분의 신장을 이식받겠습니다." 하고는 오리털을 후하고 불었다. 이 오리털이 오리 오리하며 날아가서 앞자리에 앉았던 장로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오리털이 당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장로님은 "아부()~" 라고 외쳤다. 아랫입술을 내밀고 윗입술은 최대한 당겨서 바람을 뿜으면서... 내려 앉으려던 오리털이 다시 날아 뒷줄에 앉은 권사님 위로 날아갔다. 그것을 확인한 권사님이 이야기했다. "오 주()" 다시 그 오리털은 날아올랐다. 지금도 그 교회에서는 아푸지와 추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도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다. 참과 진리 편에 서서 일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아주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성도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규정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놀라운 표현이다. 성전이란 하나님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장소이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장소, 영광을 보여주시는 장소,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다. 이 장소는 사람이 지은 건축물이다. 그러데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표현한다. 성도의 마음이 성전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예루살렘에 헤롯이 지은 성전이 있으나 지금 고린도에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성전이다. 헤롯 성전은 무너질 것이나 성전으로서의 성도는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시대가 가도 주의 성도들은 여전히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성도들과 특별한 언약관계를 맺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16). 어디서 많이 본 구절이 아닌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하실 때 하신 말씀이다. 고통을 당하는 백성들을 회복시킬 때 하신 말씀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존재들이다. 이러한 자존감을 가진다면 마음이 좁아질 리 없다. 이단(신천지 등)에 마음이 팔리지도 않는다.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에 근거하여 성도들과 선한 관계를 가진다. 이단(신천지 등)과는 함께 하지 않는다.

예화-이번주에는 왜 은혜를 받지 못했나요?

스코틀랜드의 어스킨(Erskine Brantly) 목사님이 주일예배 설교를 할때.

스칼렛이라는 여자 성도가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다음 주일도 어스킨 목사님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전혀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예배 후 어스킨 목사님을 만난 스칼렛이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목사님! 지난 주일에는 제가 큰 은혜를 받았는데 오늘은 왜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까?”

그때 어스킨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예수님를 만나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았겠지만.

오늘은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설교를 들으러 왔기 때문에 은혜를 받지 못한것 같습니다.”

/http://cafe.daum.net/yacop

 

4.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특별하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관계를 진전시킨다.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는 구약에서 이미 언급된 것들이다. 본문에서 바울도 한 차례 언급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성도들 사이에 혈연관계가 형성되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주시고, 독생자를 통해 믿는 사람을 자녀로 삼으셨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바울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사실이 성도들에게는 복음이다.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만도 감사한 일인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셨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을 믿는 사람에게 양자의 영이 왔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이 깨끗하다고 인정한 사람이다. 깨끗한 사람은 깨끗한 일을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간다.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한다. 돌아온 탕자를 아버지가 깨끗이 씻기라고 명하듯이 주님께 돌아온 우리들은 죄로부터 정결케 되었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정결하게 하는 사람, 넓은 마음씨로 성도들 영접하고, 분명하게 이단자(신천지 등)와는 구별하는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이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말씀을 들려주신다.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오셨다. 내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내게서 가까우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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