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고난의 목전에서

오예1 2020. 3. 2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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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oEhy_z76xI4설교일-주후2020329(040328)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마가복음 14:43-50

제목-고난의 목전에서

죽음을 앞에 두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별로 없다. 살만큼 산 노인도 막상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침울해진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죄의 대가로 죽어야 한다면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갖가지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사실 죽음 앞에는 어느 누구도 당당하게 나서기 어렵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는 것을 알면 방종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은 알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이므로 사람들은 죽음을 잊어버리고 산다. 가까운 친지에게 죽음이 닥쳤어도 일을 수습한 후 시간이 지나면 잊고 산다. 하기야 그렇게 살아야지 죽음의 문제로 마냥 고민하고 침울하게 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시신을 보아도 잠자는 얼굴처럼 평화로운 얼굴인 경우가 많다. 불신자들이 놀랜다. 어쩌면 신자들은 죽어서도 저렇게 평안할까? 이유가 있다. 죽음 이후의 천국을 믿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닮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셨다. 예수님은 고통이 올 줄 알지만 피하지 않으셨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피할 수도 있었겠으나 아버지의 뜻이기에 받아들이셨다. 사실 우리가 고난과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고난 앞에서 의연하였기 때문이고, 우리는 그분을 본받아 살기 때문이다.

 

1.예수님을 체포하려는 무리가 있었다.

불의가 가득한 세상은 정의를 배척한다. 불의로 가득한 사람은 정의를 행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문제는 불의한 사람들이 정의의 사람으로 가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정의의 사람이라고 자부하여도,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것을 보면 그 불의가 금방 드러난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의 경우는 그 자부심이 더 특별하다. 율법을 수호하는 사람, 율법을 보존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이야 세속의 일을 수행하지만 자신들은 영적인 일을 수행하고 있으며, 영적인 일에 전념하도 있다고 믿는다. 사람들도 그들의 이 같은 자부심을 부추긴다. 영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세속적인 생각에 꽉 차 있다. 로마군인들과 결탁하여 이득을 취하고, 거기에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음모도 꾸민다. 예수님을 향한 질투와 미움이 살인 모의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칼과 대형망치를 들고 예수님을 찾는 체포팀이 있다. 자칭 의롭다 자부하는 이들이 살인과 핍박의 우두머리나 졸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의 권력이 이와 같은 모양을 한다. 예수님은 세상 권력과 의로운 종교인들에게 고난을 받으셨다. 예수님이 그것을 알고 기다리신다.

예화-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

유정옥 사모님께서 울고 있는 사람과 함께 울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책을 쓰셨는데요.

서울 하나로교회 목사님 사모님이신데, 남편 목사님께서 종로 5가에서 목회할 때 아들 둘을 입양했는데요.

큰아이가 당시 초등학교 6학년이었어요. 잘 커서 서울 외국어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도 하고 군대도 갔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천식기가 있어요.

천식. 늘 이 기침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군에 면회를 가서 아주 그냥 사모님 마음 아픈 얘기를 들었습니다.

선임병이 자기를 너무나 괴롭히는데 식사하기 전에 꼭 연병장을 한 바퀴 돌고 뛰어 오고 난 다음에 밥을 먹으라는 거에요.

천식 때문에 뛰기가 너무나 힘든데, 어떨 때는 너무나 숨이 차서 뛰다가 쉬었다 쉬었다 한 바퀴 돌고 오면 밥 먹을 시간이 지나서, 너는 늦게 왔으니 밥 먹지 말라고. 그 말을 들으니까 어머니로써 얼마나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사모님이 이렇게 권면했답니다.

선임병이 너한테 어떻게 대해도 절대 대들지 말고 그 말 잘 따르고 하나님께서 그것조차 선으로 바꿔주신다는 것을 믿고 잘 견뎌라. 그리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까 너무나 마음이 아픈 거예요.

그래서 사모님이 새벽 예배 끝나고 나서 자기 아들이 아침 연병장 돌 그 시간이 되면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서 같이 뛰는 겁니다.

아들 생각 하면서요. 우리 아들이 지금 천식으로 호흡이 가빠서 잘 못 뛰는데 주님 건강 주셔서 연병장 잘 돌게 해달라고. 그래서 사모님도 매일 아침마다 도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것 같아요.

한 달쯤 지나서 아들한테 편지가 왔어요. 이렇게 편지가 왔어요.“어머니, 저는 오늘에서야 하나님의 복이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동안 연병장을 뛰면서 때로는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그날로 단번에 끝장을 낼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완전 군장을 하고 구보를 하면서 저는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지난 번 구보 때는 천식으로 숨이 막혀 뛰지 못하고 쓰러졌는데,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뜬히 다 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선임병을 통하여 저의 지병인 천식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그 상관이 너무 고마워서 고맙다고 경례를 했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일부터는 뛰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내일부터는 제 스스로 뛰겠습니다. 어머니께 이 기쁨을 할렐루야!’ 소리쳐 보내 드립니다.

어머니, 제 목소리 들으면 기뻐해 주십시오.”할렐루야. 고약한 자기 상사를 만났지만은 그것을 참고 견디니까 어릴 때부터 앓던 천식을 고 침받은 거예요.

때때로 이 고난이라는 가면을 쓰고 우리가 가시에 찔림을 받지만 믿음으로 잘 참고 견디면 그 고난의 가면을 벗겨낸 후에 우리에게 예비 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http://cafe.daum.net/yacop

 

2.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체포하려 하였다.

예수님을 체포하려는 사람들이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비밀 작전을 행하는 것 마냥 신호를 만들고 그 신호에 따라 체포 작전을 진행할 것이다. 그 신호란 유다가 예수님의 볼에 키스를 하는 것이다. 체포 팀은 유다가 키스하는 사람이 예수님인 줄 알고 체포할 것이다. 혹시 저항한다든지 하면 칼과 대형망치로 즉시 제압할 것이다. 체포 팀의 작전이 계획대로 되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어수룩한 체포 팀을 보내겠는가? 게다가 체포 팀 역시 누구 명령인데, 체포 작전을 허술하게 하겠는가? 악한 사람들도 치밀할 수 있다. 악한 일을 더 치밀하게 잘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고 일을 잘 한다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잘 해도 그것이 옳은 일이어야 한다. 불의한 일은 잘하면 잘 할수록 자기에게나 대상에게나, 나아가 인류와 역사에 손해이다. 예수님을 체포하는 일이 이처럼 치밀하게 진행되었다. 악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로 돌아가게 하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한다. 그러나 악인의 계획이 치밀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그들을 더 철저히 실패하게 만드신다. 하나님이 악인들의 치밀한 계획을 등에 업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이 더 치밀하다. 예수님의 구원은 사람의 방해와 우연한 일까지도 이미 예상되어 있다. 우리의 구원은 그런 구원 계획에 의한 것이다.

3. 격분하여 칼을 휘두르는 사람도 있다.

신자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놀랍고 치밀한 구원 계획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할까? 억울한 일, 불의한 일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다. 흥분의 도를 넘어 격분할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불의에 대항할 수도 있다. 마치 자신이 정의의 사도가 된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연대를 제의할 수도 있다. 이번 경우도 그렇다.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내리쳤는데, 빗나갔는지 죽이지는 못하고 귀만 잘랐다. 본문에는 "곁에 서있는 자"라고 하는데 기억력이 좋고 꼼꼼한 제자 요한은 베드로이고, 귀가 잘린 사람도 대제사장의 종이라고 하지만 "말고"라고 기록한다(18:10). 베드로는 우리가 알다시피 다혈질의 사람이었다. 어떤 일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말부터 꺼내고, 일을 벌리는 사람이었다. 그의 성격으로 보건대 억울한 고난은 절대로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베드로뿐만 아니라 우리도 그렇다. 조금이라도 손해 보기 싫어하는 현대인들에게 애꿎은 고난은 억울해서 견디지 못할 일이다. 반드시 갚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으셨다. 22:52에 의하면 예수님이 이것까지 참으라고 하시며 말고의 귀를 붙여주시고 낫게 하셨다. 26:52에 의하면 칼을 베는 사람은 칼에 의해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부언하셨다. 예수님은 당하지 않아도 되는 억울한 일을 담담히 당하셨다. 참지 못할 일도 참으시고 제자들에게 참을 것을 부탁하셨다.

4. 예수님만 남아 있다.

예수님이 체포 팀에게 말씀하신다. "나를 잡으려고 무기까지 들고 나왔느냐?" 예수님은 순순히 잡혀 주실 것이다. 그런데 체포 팀이 무기를 지니는 것을 보니 그들이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오해하였다. 순순히 잡혀주지 않을 것으로, 제자들을 동원해서 대항할 것이라고 착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이 빗나갔다. 예수님이 스스로 체포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49). 하지만 예수님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신다. 그것은 성경을 이루기 위함이다. 성경에서 무어라고 말하였기 때문일까? 성경은 메시아가 고난 받아야 할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이 고난에 직면한 이 때가 곧 성경이 말한 때이다. 예수님이 고난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이유를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제자들이 두려웠다.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고난의 자리에 가는 것은 달갑지 않다. 살길은 오직 도망가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하였다(50). 예수님만 혼자 남았다. 예수님 혼자 고난의 짐을 다 져야 한다. 어차피 예수님밖에 질 수 없는 고난이다. 그러나 고난 앞에 예수님은 당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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