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2025년 4월 17일 목요일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현대 미술을 옹호하는 사람이 영국 신문에 글을 썼다. "이 예술은 민주적이다.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에 노란 물감을 묻혀 선 두 개를 긋고, 파란색으로 비슷한 선 세 개를 더 그은 다음에 빨간색으로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라. 동그라미는 굳이 둥글 필요도 없다. 그 다음에는 신문에서 소녀의 코와 눈을 오려내 그 그림 위에 붙여라. 거기에 '인류의 화려한 미래'라는 제목을 붙여라. 그러면 비평가들이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라고 앞다투어 칭찬할 것이다. 정말 흥미롭다. 그러나 그 흥미는 무엇에 관한 것일까?
천부적인 소질이나 재능도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 소위 이러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다. 은사를 받지 못한 사람이 설교하는 예도 더러 있다. 그 결과, 많은 교회가 점점 텅텅 비어가고 있다. 루터는 당시에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던 성만찬보다 설교를 예배의 중심으로 만들어 놓았다. 세상에 훌륭한 설교자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를 한 번 보라. 실물 크기의 동상 두 개가 하나로 합쳐진 것처럼 보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다 자란 성인 남성의 몸을 젊은 여인의 무릎에 올려 놓았다. 그 여인은 자기 아들보다 더 젊어 보인다. 그녀에게는 순결의 아름다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반면에 그는 슬픔을 지닐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 그녀의 얼굴은 평온하다. 그녀는 부활에 관하여 이미 알고 있다. 이런 작품을 남길 수 있는 예술가는 쉽게 만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존 크리소스톰 같은 훌륭한 설교자들을 교리 시험으로 양산해 낼 수도 없는 일이다.
예수님 당신 마음에 살고 계셔야 예수님에 관하여 설교하거나 간증할 때, 능력이 나타난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12:34)
은사를 받지 못한 설교자는 직업을 바꾸어 다른 일을 하든지, 아니면 설교하는 은사를 받고 다시 태어난다. 문화적인 혜택도 받지 못하고 말재주가 없는 사람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서라면 아주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법이다. 어머니는 자식의 장점에 대해서 말하는 법을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을 누구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만 예수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을 위한 우리의 간증은 현대 미술과 같아질 것이다. 누구나 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작품들이 다 아름다운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도 아니다.
간증이나 설교를 얼마나 잘 하느냐 하는 것은 강단에 선 사람의 학식과 무관하다. 그것은 오로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령으로 뜨거운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