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 2025년 3월 12일 수요일
예수께서 이르시되..생명이니(요14:6) 3월12일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을까? 말씀 대신 그림을 주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
원자는 그림으로 나타낼 수 없다. 진리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더욱 그렇다. 하나님이 다양한 맛과 향기를 보여주었어도, 그것들은 하나님 말씀만큼 우리를 가르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언어는 완벽한 의사소통 수단인가? 어떤 단어는 뜻이 여러개이다. 예를 들어 히브리어 바라크는 '축복'도 되지만, '저주'도 된다. 케데샤는 '창녀'나 '성자'를 나타낸다. 헤세드는 '은혜' 혹은 '혐오'라는 말이다. 그리스어 아페스는 '용서하다'라는 말이지만 동시에 '떠나다, 저버리다'라는 말도 된다. 성경 구절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확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영생은 하나님의 뜻을 확실하고 명확하게 아는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느 목사가 열두 살 난 유대인 소년에게 말했다. "예수가 정말 하나님이 보낸 메시야이고 네가 그분을 믿지 않는다면, 너는 영원토록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소년이 대답했다. "만약 예수라는 사람이 우리의 전통적인 법이 말하는 대로 신의 이름을 더럽힌 자이며 당신은 그를 믿는 목사라면 당신은 지옥 불에서 영원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종교에는 농담이 있을 수 없다. 그리스께서 부활하지 않으셨고, 우리는 그런 분을 믿고 세상의 모든 쾌락을 포기했다고 하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다"(고전15:19 참고). 부활이 정말 있는데, 만약에 우리가 쾌락에 빠져 일생을 헛되이 보냈다면, 우리는 몹시 어리석은 자들일 것이다.
성경이 기록된 단어 하나하나에만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이 계시해주시는 것들을 다 받아들여라. 하나님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처음 전해 받은 히브리인들은 '말'을 뜻하는 적절한 단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그들은 '다발'이라는 단어를 쓰느데, 이는'물건, 실제는 있는 어떤 것'이라는 의미이다.
내적이고 외적인 실체 전체가 하나님의 확실한 계시이다. 골고다 언덕에서 일어난 일, 죄와 후회로 점철된 당신 인생, 당신 인생의 성쇠, 기쁨과 슬픔이 다 하나님의 계시이다. 생명을 믿어라. 그분의 생명을 믿어라. 그리고 그분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영원한 생명을 확신할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