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11시 인도:표세철목사
찬송/18~41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요4:24
찬송/5장
성시교독/교독문42시편98편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28장
기도/조선미집사
성경봉독/신명기28:2~3
찬송/292장
영상/링컨,요셉처럼
설교/육적 복의 내용/표세철목사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 조건을 통한 복-본문 28장은 신명기의 특징, 또는 주제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기록으로서 그 주된 내용은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과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저주입니다.
본문은 그중 복에 관한 말씀으로서 순종하는 자가 받을 가정적인 복에 관한 기록입니다. 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며 행하는 자에게만 임합니다. 그러나 복은 좋아하되 말씀을 듣고 지키기는 싫어하는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뜻과 그 계명은 멀리하고 복 받기만을 추구하다가 결국에는 신비의 방법으로 빠지기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 복(福;베라카) : 기본 동사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kneel)란 뜻이다.
이것은 곧 복(福)의 기원을 말하는 바, 모든 복은 위로부터 임하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순종의 상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성도들 가운데에는 기도할 때에 물질적, 육체적인 복을 간구하는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단지 영적이고, 미래적인 복만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필요한 것을 날마다 채워주기를 기뻐하시는 자상한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무조건 물질적으로 가난하고 육체적으로 병약한 상태로 살기를 강요하는 폭군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자신이 허락하는 풍성한 은혜를 얻고 풍요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매일 어떤 복으로 채워주고 계실까요?
예화-크리스찬 미망인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유대인
영국 빈민가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며 사는 한 유대인 크리스천의 이야기입니다.
2차 대전 때, 그녀는 프랑스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독일 사람들에게 많은 희생을 당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독일의 비밀경찰이 찾아와서 숨어있는 자기를 잡아가려고 하는 순간
이웃집에 사는 한 미망인 크리스천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당신 신분증을 나에게 주고 “당신은 빨리 피신하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물었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나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 생각을 했습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하는 말이 "나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더 큰 사랑을 하셨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죽으신 그 사랑에 비하면 나는 아주 작은 사랑일 뿐입니다." 그 말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그 크리스찬 미망인은 그녀의 유대인의 신분증을 가지고 있다가 독일 비밀경찰에 붙들려서 수용소에서 6개월 동안 있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자기를 위해 희생한 크리스찬 미망인이 전한 예수님의 사랑의 증거를 듣고 가만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을 믿게 되고 그는 일생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 자녀의 복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후 자녀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정에 자녀가 태어나는 것을, 단지 그 가정에 국한된 사소한 일로 여기거나, 남녀의 결합에 의한 당연한 현상으로만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자녀의 출산은 그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 일대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실로 자녀를 낳는 일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후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1:28)고 명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거룩한 행위이자,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는 복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녀를 출산하는 부모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로서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는 동역자로서의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나는 영원히 살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복음 전도가 D.L. 무디가 65세쯤 될 때의 일입니다.
그 당시 평균 나이가 60세 막 넘었을 때니까 조간 신문에 무디에 관한 글이 실렸습니다.
“Old Moody가 어떻다.” 늙은 무디가 어떻다.
사실 그 내용은 무디를 칭찬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무디는 Old - 늙었다. 이 말 한마디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상했습니다.
주일날 강단에 섰습니다.
“여러분 오늘 아침 신문에 보셨지요. 날보고 늙었다고 그래요. 여러분 제가 늙었습니까?”
교인들이 가만히 있었습니다.
“제가 곧 죽을 줄 알았던 모양이예요. 저는 100살은 살 거예요.”
교인들이 다 고개를 숙였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천년은 살 거예요. 아니 나는 만년은 살 거예요.
아니 나는 10만년의 10만년을 살아 영원히 살 영생을 얻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할렐루야!” 모든 성도들이 “아멘!” 대답했습니다.-http://cafe.daum.net/yacop
- 양식의 복
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는 음식을 먹고 물을 마심으로써 생명을 연장시켜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먹는 것은 생명의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은 어떻게 얻습니까?
단지 우리가 열심히 땀 흘려 노력한 결과로 얻는 것입니까?
물론 노력함으로써 얻습니다만, 더욱 근원적인 측면에서 살피면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기에 매일의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이 햇빛과 비를 내리지 않으셨다면,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일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양식을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 그분은 바로 우리의 생존의 근원이시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비록 살았으나 실상은 이미 죽은 존재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사는 동안 우리는 육체의 한계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세상으로 뛰쳐나가거나 헛된 우상에게 머리를 조아려서도 안 됩니다.
오직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만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차고 넘치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한편, 성경을 주의 깊게 고찰(考察)해 보면 복(福)에는 두 가지 차원(次元)의 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차원의 복이요, 둘째는, 영적이고 내세적인 차원의 복이다.
전자가 부차적(副次的)이고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복이라면, 후자는 근원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한 복이다.
계시가 발전되어 있지 않은 구약 시대에는 복의 개념이 주로 외형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었지만, 하나님의 뜻이 완전 계시된 신약 시대에는 내적이고 영적인 측면으로 강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예 화-벽에쓰인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아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아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아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오시며" 하지 말아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아라. 내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아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 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아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아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 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아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 우루과이의 작은 성당의 벽에 써 있는 기도문입니다 -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5가지를 말했습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하는 말솜씨입니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사실 100% 만족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적으로 나보다 많이 가진 자를 바라본다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 그것이라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라고 말씀합니다. 행복은 스스로 얻는 것입니다.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며 감사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욕심과 불만이 인간에게서 행복을 앗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자녀와 양식을 감사하며 만족하면서 더욱 더 하나님께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봉헌/다같이
찬송/295장
교회소식/인도자
찬송/570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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