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후2025년5월20일 화요일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멸망하라 [행]13:41
여기서 바울은 하박국 1장 5절을 인용한다. 바울은 선지자의 예언에 사도의 권위를 더하여 '멸망하라'고 저주한다. 이 저주는 복음에 반대하는 자들을 향한 것이다. 주님도 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이라고 선포하신 적이 있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사 시들어버린 일도 있었다. 여기서 바울은 유대 민족이 망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하나님이 자비를 베풀어, 이스라엘의 흩어진 양 떼를 불러모아 유대인 국가를 세워주신 것은 최근의 일이다.
사도라는 사람이 적대자들을 향해 '멸망하라!'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좀 낯설게 느껴진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정말 잘 알고 있다. 물론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사랑일 뿐이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랑'이라는 말 한 마디로 하나님을 다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 대해서조차도 한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나는 기독교인이지만 동시에 남자이고, 키가 크고, 목사이고, 죄인이며, 아버지이고...사랑은 하나님의 많은 속성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의 속성 중에는 공의와 분노도 있다. 이러한 속성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성경에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송가를 지은 바울은 같은 책에서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16:22 라고 했다.
기독교인에게는 묶거나 풀 자유, 축복하거나 저주할 자유가 있다. 기독교인은 적대자들을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자신들을 핍박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을 향해서는 선지자들이 그랬듯이 "멸망하라!"라고 저주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저주는 언젠가는 실현될 것이다.
칭기즈칸과 그의 강한 타타르족을 기억하라. 13세기, 비행기도 원자폭탄도 없이 그들은 중국에서부터 중부 유럽일대를 장악했다. 그들은 소련이 그 지역을 장악하는 데 들인 시간의 반밖에 들이지 않고도 그 일을 해냈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죽었다. 우리는 복음의 적들이 만들어 놓은 산더미 같은 폭탄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슐레이만 대제와 가공할 위력을 지녔던 투르크족을 기억하라. 기독교인들은 기도한 뒤에 "멸망하라!"를 외쳤고 결국 복음의 적들은 모두 소멸했다. 영적인 무기는 아주 강력하다. 상대방을 죽음으로까지 끌고 갈 힘이 있다. 충성하지 않는 기독교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베드로의 한 마디에 죽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