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4월19일(040418)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누가복음 24:44-49
제목-성경의 중심 예수님
나라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들은 줏대와 바른 안목을 가져야 했다. 이들은 권력자가 무어라고 하든지 사실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사명으로 가졌다. 만약 권력자에게 굴복하여 역사를 잘못 기록하면 후대에 나타나는 혼란에 대한 책임이 자기에게 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하는 이가 먼저 편견을 가질 수 있다. 제 아무리 바른 안목을 가진다고 하여도 약간의 편견을 가지게 마련이다. 자기의 경험이나 교육받은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후대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역사의 기록만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왜곡되고 편향적인 시각으로 자기 시대를 산다. 귀족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록하면 보통 사람들이 무시된다. 역사에 일어나는 모든 평민 운동을 반란의 시각으로 본다. 그러니 평민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자고 말하는 이도 있다. 어느 정도 타당한 말이다. 그러나 평민의 입장에서만 역사를 본다면 국가를 위해 일한 사람들을 격하시키는 일을 한다. 그러므로 어느 한 관점만 고집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사람의 생각은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전한 시각이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각이다. 예수님이 역사를 보는 시각을 우리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역사에 대한 안목을 일깨우셨다. 그 역사는 하나님 베푸신 구원의 관점이다.
1. 모든 성경이 예수님께 통한다.
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안목을 성경과 접목시켜서 본다. 어떤 이들은 역사를 하나님의 심판의 계속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세대주의의 관점에서 본다. 그들은 성경의 역사를 주전 4천년 정도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세계역사를 일곱 등분으로 나눈다. 어떤 이들은 구속사라는 관점으로 본다. 성경의 역사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이루심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다.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성경에서 일관된 맥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즉 성경의 통일성을 찾으려 한다. 이에 반해 어떤 이들은 성경을 각 권, 혹은 각 구절별로 잘라서 역사적 흐름을 추적하는 비평적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 연구는 오히려 성경의 통일성을 해치는 역할을 하였다. 학자들의 연구도 필요하고, 나름대로 유익을 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성경 자체를 무시한다면 연구에 대한 의미가 반감되고 말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역사의 주인공이요, 초점이라고 말한다. 예수님도 스스로 이것을 인정하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본문에도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의 글 그리고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것이 이루어졌다고 하신다. 즉 구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예언하고 그 예언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께 통하는 것이다.
예화-성경을 읽으면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F.M. Dostoevskii)의 아버지는 전직 육군 군의관이었으나 난폭한데다가 알콜 중독자였습니다.
툴라 지방에 작은 농토를 구입했지만 농노들과 심하게 다투다 도스토예프스키가 16살 때 그가 보는 앞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는 이 무서운 충격으로 간질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28살 때는 반역죄로 사형수가 되었고 감옥에서 장교 부인이 건네 준 신약성경을 읽던 중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누가 내게 그리스도는 진리가 아니다라고 증명한다 하더라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다.
나는 진리보다도 차라리 예수와 함께 있고 싶다"는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총살 2분전에 황제의 사면령이 내려져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위대한 기독교 작가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만납니다. 거듭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위로를 누리게 됩니다./http://cafe.daum.net/yacop
2. 예수님이 성경을 깨닫게 하신다.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깨달으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신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성경대학이나 성서신학원 등을 찾아서 공부한다. 혼자 깨닫기 어려우니 선생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반드시 필요하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바른 깨달음을 듣고 배워야 한다. 혼자 공부한답시고 외골수로 가다가 이단이 되기 십상이다. 구스의 내시도 혼자 성경을 보다 깨닫지 못하므로 빌립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아볼로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으므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제자들에게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도 하나님이 해 주시는 일이다. 선생님을 통해 배우고, 목사님께 배우고, 신학자들에게 배우는 것이라도 하나님이 깨닫게 해주셔야 가능하다. 수십 년의 연구는 사람의 노력과 힘이다. 그러나 깨닫는 지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사실 해 아래 새 것이 없다. 우리가 깨달은 것이 새로운 것 같으나 그것을 깨닫고 연구한 사람들이 교회 역사 속에 있다. 교회는 잘못된 것을 배격하고, 진리의 체계를 세워 나갔다. 이 모든 과정이 예수님의 은혜요 보호하심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깨닫게 하셨고, 교회 역사 중에 믿음의 사람들에게 깨닫게 하셨고, 또 오늘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 성경의 중심이 예수님임을 알게 하신다.
예화-너는 성경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니
주일학교 선생님이 한 어린이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성경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니?>
아이가 보라는 듯이 금방 대답하였습니다.
<물론이죠. 다 알고 있어요.>
<그래, 뭐가 있는지 말해볼래?>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성경에는 요, 헌금 봉투, 피자 쿠폰 두 장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누나 성경 속에는 뭐가 있는 줄 아세요?> <말해봐라.>
<선생님, 우리 누나 성경 속에는요 연애 편지가 있어요.>-http://cafe.daum.net/yacop
3.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이라 하신다.
성경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의 본성과 존재 그리고 사역이 성경에서 증명됨을 믿어야 한다. 성경에 계시된 예수님의 비밀을 알면 알수록 신비하다. 그 비밀이 우리에게 드러날 때 우리는 예수님 앞에 굴복한다. 굴복하지 않고 견딜 재간이 없다. 하나님의 신비한 구원계획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이루어짐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고. 입에서 탄성과 찬송이 나온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이 성경에 계시된 예언의 성취였다. 예언의 성취는 단순히 성취에 머물지 않고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그 영향이란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는 회개이다. 회개는 예수님 앞에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회개하는 사람이 죄 사함을 얻는다. 사람이 생각하는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죄 사함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능하다.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방법이 곧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 방법이다. 이 죄 사함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세계로 퍼져 나갔다. 역사의 초점이 되신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로운 역사가 열린다. 과거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미래 역사의 주인공으로 일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연다. 제자들이 그랬고, 오늘 우리가 그렇다. 예수님의 증인들이 예수님과 함께 새 역사를 열어 가는 것이다.
예화-성경의 인물을 따라서
한 목사님에게, 이제 갓 운전면허를 취득한 아들이 와서 말했다.
“아버지, 이제 저도 면허를 취득했으니 차 좀 빌려 주시면 안 돼요?”
아들의 말에 목사님은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래. 좋다! 단 그러기 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하자! 네가 학교 성적을 끌어올리고, 하루에 조금씩 성경공부를 하고 머리를 단정히 깎는다면 부탁을 들어주도록 하지.”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와서 차를 빌려달라고 말했다.
“아버지! 오늘 차 좀 빌려 주세요!”
그러자 목사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들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단다. 학교 성적도 오르고 매일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그런데 머리는 아직도 깍질 않았구나. 왜지?”
그러자 아들이 이상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제가 그동안 성경공부를 좀 했는데요 아버지. 삼손이나, 모세,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님까지도 머리를 기르고 다니셨더라구요! 그래서 뭐...”
그러자 목사님이 미간을 약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렇지! 맞아. 그런데 말이야 그 분들은 어디든 두 발로 걸어다니셨단다! 그만 나가보거라!”
4. 예수님이 능력을 약속하셨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증인으로 선택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 죄 사함의 회개를 체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체험이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체험만으로 증인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다. 증인은 예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예수님의 일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능력을 약속하신다. 위로부터 능력이 제자들에게 임할 것이다. 제자들은 그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 성에서 기다려야 한다. 예수님이 하신 약속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예수님이 새 역사를 열어야 할 제자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신다. 예수님은 명령만 하고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니시다. 명령하시고 필요한 능력을 함께 주신다. 예수님이 증인들을 통해 구원 역사를 이어가신다. 제자들에게 능력을 주심으로 구원 역사를 예수님의 뜻대로 열어 가신다. 예수님은 증인된 제자, 능력을 받은 제자들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예수님의 흐름으로 만드신다. 그 흐름은 오늘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여전하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고, 하늘의 능력을 주셨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를 통해 역사 흐름이 예수 흐름으로 바뀐 오묘한 섭리가 우리에게 주어졌고, 앞으로 더 펼쳐진다니 이 어찌 아니 기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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