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일-주후2020년4월26일(030427)
설교자-표세철 목사
본문-요한복음 1:36
제목-나의 구세주이신 예수님
요한복음에 나오는 세 인물을 봅니다. 사도요한, 세례요한, 예수님
그 중에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존재하셨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고, 세상의 빛이시며 사람들의 빛이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한다"고 한 말처럼 우리는 이 순간이 회심하는 순간이며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축소, 왜소, 보잘것없어야 하며, 주님은 팽창, 거대, 귀하게 보여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오! 정말 놀라운 설교자로구나!"라고 할 것인가? "오! 정말 놀라운 구세주로구나!"라고 할 것입니까?
우리의 과업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요한의 증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고 외치는 그는 힘 있는 설교자였습니다. 수많은 위대한 설교자보다 더 위대한 설교자였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외치는 요한의 설교는 날마다 동일했고 군중들이 바뀌어도 동일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가 가진 모든 재능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 결과로 많은 군중들과 회심자들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다 예수를 좇아갔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이 그가 외치던 대로 믿었기 때문에 그의 군중들을 잊어버렸던 유일한 첫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설교자를 믿고 그의 메시지를 믿는다면 성도들은 설교자를 따르고 그를 후원합니다. 그러나 참된 설교의 목적은 예수님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많은 사람들의 수고의 결과였습니다.
영혼을 승리케 하는 요한의 방법은 모든 설교자들에게 하나의 모델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었습니다. 우리의 삶과 증거, 헌금으로써 그 본을 따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신들이나 성례전이나 사람들이나 교회보다 높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존재하며,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무엇인가 달라. 그리스도가 그렇게 만들었다지. 나도 그런 구주를 알고 싶어"
요한이 맨 처음 외쳤을 때 현저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포기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듣고 구원받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들은 말씀도 헛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구원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바울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번 듣는 것보다 여러 번 듣는 것이 주께로 돌아오기가 쉽습니다.
요한이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언급한 것은 희생 제물로 끌려가는 한 마리의 양으로 상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표현할 때는 주님의 생활이나 기적, 설교, 모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를 지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의 설교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라갔고 요한은 목 베임을 당하고 하늘나라로 옮겨갔습니다. 세례요한과 같은 능력 있는 증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화-무덤에서 자라는 무화과나무
영국 남동부의 하트포드셔 왓포드 교회의 묘지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교회 묘지에는 네모꼴의 대형 무덤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큰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덤은 무신론자인 한 여인의 무덤이었는데 그녀는 임종 직전까지 하나님께 도전 했습니다.
심지어는 임종의 병상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무덤에서 나무가 나와 자라게 할 것이다.'라고 공언했습니다.
그런 그녀의 무덤에서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분임을 무언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시몬 베드로의 구원
길 가는 아이를 보고 "저 아이는 자기 아버지처럼 행동하거든. 어디를 보나 자기 아버지 그대로야!"라는 말을 하듯이 예수님의 행동은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는 세례요한의 외침에 제자인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우리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까? 어떤 이들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하여, 병 고침 받기 위하여, 가족의 병 고침을 위하여, 돈과 명예와 안락과 쾌락을 위하여 주님을 따릅니다.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어야 하며 예수님과 가까이에서 동행하며 주님을 더 섬겨야 될 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만나 데이트하기만 하고 결혼해서 함께 살지 않는다면 만족할 수 없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함께 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와보라",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주님께 나오는 것을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안드레와 요한은 하루 종일 주님과 함께 거했습니다. 거한다는 것은 함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는 것이며 그와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며 항상 그의 임재를 느끼며 가장 훌륭한 친구로서 항상 그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안드레가 주님을 따랐을 때 너무나 충만해서 가슴이 터질 지경이었으며 찾고 있던 메시아를 보았고 말을 들었고 복을 받았습니다. 이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지고 싶었습니다.
그는 베드로에게 달려가 "우리가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를 찾았노라"고 외쳤습니다.
구원의 증거 가운데 하나가 전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구원받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베드로가 기독교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지 모르고 안드레가 전도했습니다. 우리가 전도한 사람 중에는 빌리그래함보다 더 위대한 전도자가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안드레는 특별히 교육받은 것도 없지만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베드로에게 알리고 싶었고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지만 안드레의 전도로 그리스도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전도란 내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가 "내가 너에게 새 이름을 주노라 지금까지는 시몬이라고 불렀으나 이제부터는 베드로라고 부를찌니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반석과 같은 안정된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새로운 이름 "성도"라는 이름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새로운 성품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갈릴리 호수의 어부가 되었을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3. 나다나엘의 매력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빌립은 일생동안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을 좇는다는 것은 옆에서 걸어가거나 앞서거나 끌려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동반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빌립도 안드레처럼 나다나엘에게 달려가 "우리가 구약성서에서 읽었던 바로 그분 나사렛 예수를 만났다"고 전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는 나다나엘에게 "와보라!"고 빌립은 외쳤습니다. 전도는 설득이 아닙니다.
기독교란 그리스도를 찾는 문제입니다.
나다나엘을 본 예수님께서는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너를 보았노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나다나엘은 준비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약속하신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다섯 사람은 서로 판이하게 달랐지만 동일한 진리를 받아 들였으며 동일한 주를 섬겼으며 동일한 집에 이르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성격의 소유자들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뛰어난 재능이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만 하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보다 훨씬 훌륭한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의 경이로움
주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너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나를 믿느냐? 이보다 더 큰일을 보리라 어느 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64에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우리가 살아생전에 겪게 되는 놀라운 일들은 주님 앞에 서는 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현재 그대로 약하고 비참한 죄인으로써 그리스도께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과거와 같은 사람이 아닌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장래에는 오늘과 같지 않은 상태가 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느 날엔가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될 것입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놀라 우신 분입니다. 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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