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주후2024년11월25일 월요일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
주후627년, 수도사 파울리누스가 노섬브리아왕 에드윈의 왕궁에 찾아가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설득하자 왕은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신하가 다음과 같이 말하자 결단을 내렸다.
"폐하, 제가 보기에 인간의 삶은, 우리가 모르는 시간과 비교해 볼 때, 집 안으로 잠시 날아 들었다가 이내 다시 밖으로 날아가는 참새의 비행과 같다고 생각됩니다. 폐하께서 겨울 저녁 식사를 앞에 놓고 귀족들과 앉아 있습니다. 가운데서는 난로가 활활 타오르고 복도는 무장한 병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밖에는 아주 거센 바람이 불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 문으로 날아든 참새는 곧 다른 문으로 나가지만, 집 안에 들어와 있는 동안에 겨울의 혹한에서 안전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도 잠시, 참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겨울 속으로 날아가버립니다. 겨울에서 또 겨울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순간입니다.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인생이 끝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따라서 이 새로운 가르침이 보다 확실한 것을 알려줄 수 있다면, 그 기르침을 따를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의 이러한 물음에 대답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주셨다(요17:6). 그 이름을 아는 것이 바로 이 세상과 영원한 세상의 모든 문을 활짝 여는 열쇠이다. 많은 민족의 고대 문학 작품을 보면, 한 가지 공통된 사상이 그 밑을 꾸준히 흐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사물의 실제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 사물이 가진 능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옛 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정말 옳았다. 어떤 물질의 화학 성분을 알아내면, 그것을 이루는 성분 전체를 다 파악하면, 그것은 우리 수중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진리를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