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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오예1 2024. 7. 16.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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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024년 7월 16일 화요일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왕하1:7)

엘리야가 이스라엘 아하시야 왕에게 전갈을 보냈을 때, 왕은 신하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보는 대신에 위와 같이 질문했다. 어떤 메시지의 가치는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의 직위에 따라 좌우된다. 가령 돈을 몹시 탐하는 사람이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눅6:24)라는 주제로 설교했다고 하자. 그런 설교를 듣고 누가 감동할까?
초대 교회 기독교인들은 마음과 행실이 올바른 사람들이었다.
발가벗겨진 채 팔목과 발목이 사슬에 묶여 벽에 매달렸고, 몽둥이와 날카로운 집게와 횃불로 고문당했다. 그러나 고통을 견뎌냈으며 그리스도를 부인하지도, 형제들이 기도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나는 시간과 장소도 일절 발설하지 않았다.
인간이 발명한 어떤 기계도, 핍박 시대에 초대교회 형제자매들이 견딘 압박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굶주린 그들은 영양 상태가 좋은 투사들을 상대로 훌륭하게 싸웠다. 마음과 행실이 올바른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고통을 당할 때도 그들은 자신을 고문하는 사람들을 자신보다 더 불쌍히 여겼다. 심지어 그들은 때리고 욕하는 사람들 모습에서, 고통을 통하여 천국으로 갈 채비를 갖춰주는 은혜의 천사들을 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신학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초대 기독교인이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새로운 신학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토대 기독교인이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어떨까? 사람들이 우리 행동을 지켜보고,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더 잘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어떨까? 엘리야의 경우, 소박한 옷차림까지도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지를 잘 나타내주었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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