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
주후2024년 1월 20일 토요일
의인은 자기의 가축의 생명을 돌보나 악인의 긍휼은 잔인이니라(잠12:10)
말들이 경주나 서커스 같은 데서 높이 뛰어오르는 것을 사진으로나 실제로 가끔 볼 수 있다. 그런데 말의 발뼈가 약하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자. 이 짐승은 뛰어오르라고 창조된 것이 아니다. 아주 심하게 매를 맞기 때문에 그런 동작을 배울 뿐이다. 최근에는 말에게 전기 충격을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커스 조련사 채찍에는 아주 작은 전기 배터리들이 박혀 있다. 담을 뛰어넘는 묘기를 가르치기 위해, 말의 다리를 쇠로 만든 채찍으로 치면, 순간적인 고통에 말이 높이 뛰는 것이다.
이런 훈련 방법을 지지하거나 응원하면 안 된다. 오히려 그 동물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나는 개인적을 피라미드에 감탄하지 않는다. 모세는 피라미드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모세의 생각은 그 피라미드들을 세운 노예들의 비참함에 쏠려 있었다.
공산주의 국가의 감옥에서는 죄수들이 무척 배를 곯는다. 일주일에 빵 한 조각이야말로 누구나 애타게 누려보고 싶은 호사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독교인 죄수들은 가끔 쇠창살이 쳐진 창문턱을 찾는 참새나 제비에게 주려고 빵을 조금씩 모은다. 새들은 기독교인들이 있는 감방과 없는 감방 쇠창살을 구분할 줄 안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때문이다.
성경은 동물 보호에 관하여 여러 번 언급할 뿐 아니라 힘없는 짐승에 대한 잔혹 행위나 무자비한 행동들을 금하고 있다(신22:4).
예수님도 새나 다른 동물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보였다(눅14:5). 예수님은 자신을 양이나 사자나 어린 병아리들을 거느린 암탉에 비유하면서 조금도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열심히 흉내 내자. 이웃에게 사랑과 관심을 보일 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