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
주후2023년 8월 16일 수요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요2:4)
독일의 신비학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여자는 영혼을 위한 가장 고귀한 이름이다"라고 썼다. 루터의 고해 신부 스타우피츠는 "영생의 열매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여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기록했다. 예수님에게 여자는 영예로운 이름이었다. 예수님이 어머니를 여자라고 지칭한 이유는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대로 뱀의 머리를 밟을 사람이 바로 여자의 후손이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는 비난하는 뜻이 조금도 담겨 있지 않다. 이 일을 유일하게 기록한 복음서 저자 요한은 아마 예수님의 어머니에게 직접 이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뒤에 요한이 마리아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갔기 때문이다(요19:27).
번역문으로 읽는 윗글은 자칫 불손하게 들릴 수 있다. 헬라어 원문에는 '티 에모이 카이 소이'라고 되었는데, 이 표현은 고대 신비주의 종교에서 흔히 쓰이던 어구로 "우리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 신비한 종교에서 흔히 쓰이던 어구로 "우리 둘 사이에 흐르고 있는 이 신비한 액체는 무엇입니까? 당신이 어떻게 내 의도를 눈치챘습니까?"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은 또 어머니에게 "아직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떨어졌을 때 이적을 베풀었다. 그래야만 포도주에 물을 타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자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한계에 부닥칠 때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는 기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어머니는 간청했고, 예수님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셨다. 가나안 여인의 기도에도 마음을 돌린 분께서(마15:28) 어떻게 거룩한 어머니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어머니는 아들이 어떻게 할지를 알고 있었기에 하인들에게 일렀다. "그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하라" 예수님이 술을 원하는 손님에게 목욕물이라도 줄 것처럼 빈 통을 물로 가득 채우라고 이상한 명령을 하더라도, 반드시 좋은 결과 생긴다는 것을 그녀는 확신했다.
우리 인생의 원칙도 그래야 한다.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일는 무엇이든지 하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 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