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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오예1 2023. 7. 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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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023년 7월 1일 토요일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 12:1)
위대한 성도들을 본받자.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 존 드 라 살레는 무료 고등학교와 교사들을 위한 신학교를 프랑스에 최초로 세웠다. 넘치는 사랑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그는 "배우지 못해서 타락하는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진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생활에서 겪는 사소한 일에도 속상해하고 분노하지만,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한 번이라도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는가?
이러한 사명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던 그는 엄청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그들의 가난한 선생이 되었다. 나는 그의 마음과 오늘날 월급을 많이 받으면서도 임금 인상을 외치며 파업을 일삼는 교사들 마음을 비교하곤 한다. 그런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기주의의 본보기가 된다. 그들이 아이들 마음에 남긴 추한 인상은 나중에 그들이 아무리 아름다운 진리를 가르쳐도 쉽사리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드 라 살레는 동료 기독교인들과 실직 상태 교사들에게 많은 항의를 받았다.
산 세베리노의 파시피쿠스는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군이 적다"는 주님 말씀을 한시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세상에는 신학 박사 보다 전도자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도 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이방인들에게 선교사로 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른 직분을 주셨다. 고통이라는 직분이었다. 파시피쿠스의 발이 퉁퉁 붓기 시작하더니 결국 사랑하는 영혼들을 찾아다니며 전도하는 일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뒤에는 점차 시력을 잃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은 내적 혼란으로 많이 파괴되었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고통 당하는 것이라고 그를 모욕했다. 그러나 파시피쿠스는 그 모든 고통이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닥쳐오는 모든 불행을 용기 있게 견뎌 나갔다.
피시피쿠스가 죽은 지 3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의 이야기에 감동하여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토록 아름답게 고통을 이겨낸 그의 이야기를 듣고 구원받은 사람 숫자는, 그가 자신의 계획대로 이방인들을 찾아가 전도에서 구원한 사람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이기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자.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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