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주후2023년6월2일 금요일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갈라디아 여러 교회들에게 [갈]1:2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 성도들을 훈계하는 편지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바울이 기록한 갈라디아서는 영원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세상 끝날까지 기독교인을 교육하는 데에 쓰일 것이다. 훈계하는 편지를 쓸 때는 개인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믿음의 형제들과 일치된 의견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믿음이 있다. 예전에 성도들이 전해 들었던 믿음이고, 모든 형제자매가 언제 어디서나 붙잡는 믿음이다. 모든 성도와 교통할 때만 우리는 영원한 진리를 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있던 '모든 형제'와 공동으로 갈라디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예수님을 의지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한다. 우리의 형제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많은 천사를 거느리신다. 그들도 우리 형제이다. 무엇보다, 영광을 입은 성도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신 뒤,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온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있잖아, 그 사람 코가 하나던데"라고 말할 리는 없다. 코가 하나 있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일에 놀라 크게 소란을 떤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이미 죽은 성도와 계속 친교를 나눈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죽은 사람을 다시 불러오는 심령술에 반대한다. 우리는 그들이 가까이 있음을 그런 식으로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기 위하여 이 세상을 떠난 성도들이 우리와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믿는다.
성경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히]12:1 라고 말한다.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 존 크리소스톰의 전기에 소개된 일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그가 설교 원고를 쓰고 있었다. 한 기독교인이 보니, 크리소스톰 옆에 바울과 요한이 서서 귀엣말로 생각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아이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은 이 이야기를 믿는다. 나는 이런 초자연적인 사건들에 관하여 일일이 말하지 않는다. 그런 사건들에 관하여 일일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정말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고, 이미 세상을 떠난 성도와 교제하는 것이 일상의 흔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우리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와 더불어' 편지를 쓰자.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