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주후2023년5월23일 화요일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마]27:49
사람들은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하거나 무신경하거나 냉담하다.
당시 예루살렘 시민들은 골고다 언덕에서 범죄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모습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그들은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마다 범죄자들이 지르는 비명을 자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던 그 금요일, 십자가 처형을 당한 세 명 가운데 한 사람이 가장 휼륭한 사람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분이 가장 선한 분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참지 못할 끔찍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옆에 매달린 강도를 회게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그 예수님이 절망에 휩싸여 외치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이를 지켜본 군중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라고 서로 말했다. 물을 한 모금 주거나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은 그들 마음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주나 두고 봅시다." 엘리야는 옛 선지자를 가리키는 고유명사일 뿐 아니라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짧은 문장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미로 보면 누구나 엘리야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을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부른 까닭도 그런 의미를 마음에 두셨기 떄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겨야 한다. 동점심 많은 여호와 하나님을 인생으로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죄 없는 사람이 고통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수동적인 태도만 보일 수는 없다.
"가만 둬,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자고!" 실제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그런 태도를 보인다. 이런 사람들이 골고다 언덕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모습을 지켜봤고, 아무 감동도 받지 못했다. 요즈음 시대에도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이 고통당한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멸망을 피할 수 없다. 그들은 믿음의 형제자매가 굶주리거나 감옥에 갇혀도 무관심하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다만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줄 뿐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도 무관심과 타성에 젖은 이들이 많다. 우리는 그러한 태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당신이 필요할 때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지 말라. 있는 힘을 다해 도와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