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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예1 2023. 4. 27.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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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2023년4월27일 목요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4:26)

소련의 작가 아나톨리 크라스노프 레비틴은 말했다. "사랑과 분노는 자매이다. 분노가 없는 곳에는 사랑도 있을 수 없다. 고대 예언자들이 전한 말들은 강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는 그들의 가슴이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은 자기 민족을 억압하는 자들을 향한 분노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진리의 길을 따르지 않는 자기 민족을 향한 분노를 가져오기도 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보고 주님이 하신 말씀에도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죄를 보고도 두려움이나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기독교인다운 감정도 없고 인간다운 감정도 없는 사람이다.
범죄자를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가 늘 올바르다고 할 수는 없다. 압살롬은 중대한 죄를 범했다. 그는 부하들을 시켜 자기 형 암논을 죽이라고 지시했다(삼하13:28). 이 살인을 저지른 후에 압살롬은 다윗 왕을 피해 도망쳤다. 스스로 법을 집행하여 살인을 저지른 자에게는 그런 유배 생활이 마땅한 벌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하나님이 세우신 유일한 재판관, 왕이 사형을 선고하지도 않은 사람을 마음대로 죽인 경우는 더 그렇다. 따라서 다윗은 스스로 형벌을 선택한 압살롬이 벌을 달게 받도록 놔뒀어야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형편없는 충고에 귀를 기울여, 아무런 화개의 빛이나 삶의 변화를 보이지도 않는 그 살인자를 용서해 주었다. 그 살인자는 용서를 빈 적도 없었다. 결국 압살롬은 예루살렘에서 다시 권력을 얻어, 자기 아버지 다윗 왕을 몰아낼 음모를 꾸몄다. 그 과정에서 결백한 사람이 많이 죽었고 여러 사람이 고통과 슬픔을 겪었다. 다윗 왕이 거룩하지 못한 너그러움 대신에 거룩한 분노를 보였더라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사53:5)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씻어주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믿고 거듭나지 않는 한, 모든 죄인은 자신이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 오직 그럴 때, 기독교인의 선함 마음을 악용하는 일들이 사라질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순교자의 소리 리처드 웜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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