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주후2022년4월10일 종려주일

오예1 2022. 4. 1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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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sWUIfPedw4I 

찬송/139~142장
인사/내가 먼저 인사합시다
묵상기도/마21:9
찬송/4장
성시교독/교독문129종려주일
신앙고백/사도신경
찬송/140장
기도/지석임사모
성경봉독/마태복음21:1~11
찬송/141장

영상-사비나
설교/호산나/표세철목사

성경에서 종려나무(the Palm)는 의, 아름다움, 승리 등을 상징했다. 그런데 고난 주간의 첫날이 종려 주일로 불리는 것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당시 메시야로 개선하는 왕처럼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는 뜻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든 데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한때 이 주일을 호산나 주일(Dominica Hosanna)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것도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시 그의 입성을 환영하는 무리가 '호산나'라고 외친 데서 유래된 말이다.
종려 주일은 그 옛날 서로마 교회에서는 이날 그리스도의 수난사(受難史)를 낭독했기 때문에 '고난의 주일' (Dominica Passionis)이라고 불리우기도 했다.
종려 주일은 이외에도 '꽃의 날' 이란 뜻에서 Floridum, Dominica Florum 등으로 불리워졌으며, 부활절날 세례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세례 지원자들과 관련하여 '세례 지원자 주일'(Dominica Competentium)이라 불리기도 했다.
우리는 이 날을 맞을 때마다, 지금 당장은 당신께 환호하는 무리들이 곧 당신을 못박으라고 돌변할 자들임을 아시면서도, 즉 며칠 후 당신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것을 아시면서도 다만 그들 죄인의 죄값을 대신 치루사 구원을 주시려는 뜨거운 사랑으로 백성들의 환호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주님의 심정을 다시금 헤아려 보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바로 나를 위해 주가 당하신 노고와 고난이 그 얼마나 크고 감사한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새로이 깨달아야 하겠다. 더욱이 본래 제 2위 성자요 메시야이시면서도 초라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주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구속주요 메시야이신 예수님의 겸손과 온유에 대해서 묵상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고난을 향한 첫 걸음인 동시에 고난 후의 승리를 위한 영광스런 걸음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환호하는 군중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기쁨으로 주님의 영광의 행렬에 동참하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이 행렬을 따라야 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예화-[전영호의 크리스천유머] 酒를 찾는 사람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주(主)여!’를 부르짖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주(酒)여!’를 찾는 크리스천의 입을 ‘주둥이’라고 하는 거라나? 물론 술 주(酒)자 ‘酒둥이’지.
한데 주둥이 소릴 들어가면서도 끊기 힘든 게 술이 아니던가?
목사님:장로님! 제발 술 좀 끊으세요! 오늘 신문 못보셨어요? 술을 안 마시는 사람보다 간암 발병률이 몇 배나 높다잖아요.
장로님:그래서 끊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오 주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술을 끊겠다고 합니다.
장로님:그게 아니라 그 신문을 끊기로 했다는 얘긴데….
필자가 알고 있는 장로님 중에도 이따금 ‘오 酒여!’를 찾는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기도 응답으로 술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10여년 전의 일인데 정말 축하해줄 일 아닌가? 아무튼 그 소식을 듣고 몇 주일이 지난 후였을 것이다.
(방송국 출연 관계로 거의 매일 여의도에서 시간을 보내던 시절임) 어느날 배가 촐촐해서 버스를 개조한 스낵카에 앉아 김밥을 먹고 있는데 술을 끊었다고 축하 인사까지 받았던 그 장로님이 만취가 되어 스낵카로 올라오시는 게 아닌가?
일단 눈이 마주치면 얼마나 무안할까 싶어 고개를 숙이고 김밥만 꾸역꾸역 먹고 있을 수밖에…. 한데 스낵카에 올라온 그 장로님은 주문은 하지 않고 의자에 몸을 던지더니 코를 곯더란 말씀. 그러고 30분쯤 지났을까,장로님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야! 이 버스 왜 안가는거야? 아직도 여의도잖아! 앙! 빨리 가자고!”
얘기하다가 보니 필자는 술을 전혀 안 마시는 것 같은 분위기가 깔렸는데 그건 천만의 말씀이다. 한동안 ‘오 酒여!’를 찾았을 땐 목사님이 술을 끊으라고 권유하면 반드시 이렇게 맞섰던 주둥이었다.
전영호:술에 취하지 말랬지 마시지 말라는 말씀은 없잖아요?
후후 없긴 왜 없나? “그런 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래도 안 끊어? 결국 끊고 말았지.
크리스천유머연구소장(humorschool@paran.com)
① 이 행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야 합니다(5절) - 이 행렬 맨 앞에 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범죄한 인류의 구원자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분만이 유일한 생명의 수여자인 것입니다. 이분의 이러한 구주되심을 바로 알 때 진정 이 행렬의 동참자가 될 수 있습니다.
② 헌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8절) - 행렬에 참여한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영광의 왕께서 가시는 길에 폈습니다. 이는 왕에 대한 충성과 헌신의 고백입니다. 오늘날 만왕의 왕되신 주님을 따르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충성과 헌신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예화-신장을 기증할 교인
2000명쯤 모이는 교회 담임목사님이 목회를 하다 신장이 상해 기능을 전혀 못하게 되어 신장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목사님이 그 사실을 통보받고 너무나 당황했다. 목사님이 하루는 용기를 내서 설교 중에 이 사실을 밝히면서 성도들에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과 동역을 하다 신장이 못 쓰게 되었습니다.
신장 이식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진다고 합니다.
날 여러분들이 동역자로 생각해 준다면 누가 내게 신장 하나 기증해 줄 분이 있습니까?
혹 내게 신장을 하나 기증해 주실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 보세요.”
순간 긴장, 침묵이 잠시 흐르고 여기저기서 한 사람, 두 사람 손을 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예배에 참여했던 2000명이 다 손을 들었다.
이 목사님이 너무 감격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 이 중에 내가 어느 분 한 분을 택하면 나머지 분들이 상심할 수 있을테니 한 주간 기도하고 한 분을 택하겠습니다.” 드디어 한 주간이 흘러 주일이 되었다.
감사하게도 지난 주에 나왔던 분들이 한 분도 빠지지 않고 다 나왔다.
이제 목사님이 강단에서 한 사람을 선택할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내가 한주간 곰곰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내가 직접 선택하는 것 보다는 제비뽑기를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오리털 하나를 꺼내 보이며 “내가 이제 이것을 불겠습니다. 이 오리털이 떨어지는 분의 신장을 이식받겠습니다.” 하고는 오리털을 후하고 불었다.
이 오리털이 오리 오리하며 날아가서 앞자리에 앉았던 장로님 머리 위로 날아갔다.
오리털이 당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장로님은 “아부(푸)~지”라고 외쳤다.
아랫입술을 내밀고 윗 입술은 최대한 당겨서 바람을 뿜으면서...
내려 앉으려던 오리털이 다시 날아 뒷줄에 앉은 권사님 위로 날아갔다.
그것을 확인한 권사님이 이야기했다. “오 주(추)여” 다시 그 오리털은 날아올랐다.
지금도 그 교회에서는 아푸지와 추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③ 끝까지 참여해야 합니다(9절) - 무리들이 주님을 환영하는 데에는 여러 종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왕이 될 때 자신들의 이익을 얻고자하는 욕심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서 보좌가 아닌 죽음의 골고다를 향해 가시자 곧 주님을 버렸습니다. 우리는 내가 아닌 주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주님의 행렬에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이 행렬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이 축복의 구주가 되실 때에는 헌신과 충성을 다하지만, 고난과 시련이 있을 때에는 쉽게 그 분을 저 버리지 않습니까? 중간에 포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끝까지 주님께 헌신하고 순종하여 승리하는 삶을 사는 영광스런 성도가 됩시다.
봉헌/다같이
찬송/142장
교회소식/인도자
찬송/53장
축도/표세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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